한심한 국가가 영웅을 찾는다
이제야 봤다. 개인적으로 졸업논문에 법인 입사 준비에 바빴던 2019년이었다. 뒤늦게나마 올해가 가기 전에 좋은 미드를 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마침 내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방사능 올림픽이라는 비판이 벌써 불거져 나오는데 ‘참으로 시의적절’한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어느 노인의 연설 장면. “국가가 안전하다고 하지 않느냐? 그럼 믿어라! 국가가 혼란이 생기면 안 된다고 하지 않느냐? 그럼 잠자코 있어라!” 드라마는 겉보기에 소련의 사회주의가 문제를 더욱 키운 것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드라마가 진정 문제 삼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와 그에 기반한 비밀주의다.
동일본 대지진 수습기에 총리를 맡게 된 간 나오토는 훗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도쿄전력이 총리였던 자신에게도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사건 직후 국제 원자력기구(IAEA)는 사고 규모를 5등급으로 발표했지만 도쿄전력과 관료들의 비밀주의는 결국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규모를 7등급으로까지 키웠다. 역사상 7등급 규모 사고는 딱 두 개밖에 없다. 그중 한건이 후쿠시마, 나머지 한건이 체르노빌이다.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후쿠시마의 스케일이 생각보다 컸구나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들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랬다면 저들의 비밀주의가 어느 정도 먹힌 거 아닐까.
심지어 관련자들이 법정 최고형을 받은 체르노빌 사고와 달리 후쿠시마 사고는 관련하여 처벌을 받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이 와중에 일본은 특정비밀보호법(特定秘密の保護に関する法律)을 통과시켜 후쿠시마와 관련된 의혹 제기를 사실상 완전무력화시켰다. 드라마는 끊임없이 묻는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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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한심한 나라일수록 재난이 닥쳤을 때 영웅을 찾는다. 구조적 문제가 개인의 영웅적 면모로 은폐되기 때문이다. 체르노빌의 바실리가 그랬다. 일본에서도 사고 직후 50인의 원전 근로자가 남아 작업을 계속했고 ‘50인의 영웅’ 칭호를 얻었다. 우리라고 다른가? 세월호 당시 언론은 수많은 의인을 만들어냈다. 영웅에 도취된 와중에 우리는 이제야 세월호의 진상을 조사하는 검찰을 마주할 수 있었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글쎄, 몇몇 경우에서는 별 대가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