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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Dec 09. 2019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다르다

맹자 양혜왕편 제7장

맹자가 제선왕을 만났을 때였다. 제선왕은 맹자에게 본인이 덕 있는 통치자가 될 수 있는지 물었다. 맹자는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아부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제선왕은 당시 백성들로부터 놀림(?)을 받고 있었다. 제사를 위해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를 보고 ‘소가 너무 불쌍하니 양으로 바꾸어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듣기에 기가 찬 이야기였다. 대관절 소는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나? 그냥 소가 더 비싸니까 양으로 바꾸라 한 것 아닌가? 그러나 맹자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은 공자보다 맹자가 좋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을 행하는 기술입니다. 소는 보았으나 양은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군자가 짐승에 대해 산 것을 보면 그것이 죽는 것을 보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 소리를 들으면 그 고기를 먹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이것으로 군자가 푸줏간을 멀리합니다."

- 맹자 양혜왕편 제7장 中


소가 더 비싸서 양으로 바꾸길 명한 것이 아니다. 내 눈 앞에서 끌려가는 소가 우는 소리를 도저히 듣지 못하겠으니 다른 동물로 바꾸라 말한 것이다. 물론 소가 죽던 양이 죽던 하나의 생명이 죽는 것은 같다.


허나 ‘소가 죽던 양이 죽던 뭐라도 죽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하는 생각과 ‘내 눈 앞의 소가 눈물을 흘리니 다른 동물로 바꿔라’는 생각 중  정의로운 생각은 무엇일까?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다르다. 맹자는 눈 앞의 소를 보고 차마 어쩌지 못하는 군자라면 푸줏간에도 못 들어갈 거라 말한다. 어차피 군자가 푸줏간에 가던 안 가던 생명은 죽는다. 생명의 울음소리가 주는 고통을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은 다르기에, 맹자는 군자가 푸줏간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단언한다.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다르다’ 양혜왕편 7장의 메시지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도 무관치 않다.


지금도 복날이면 ‘개는 불쌍하고 소는 안 불쌍하냐?’는 목소리가 들린다. 내 집에 개가 아니라 소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소도 못 먹는다. 개를 먹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개만 불쌍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저 개부터라도 먹지 말자고 말할 뿐이다. 소를 먹던 돼지를 먹던 개를 먹던, 일단 내가 먹는 동물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고 먹는 사회와 그저 먹기 바쁜 사회는 다르다. “개를 먹어도 좋다. 하지만 개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하고 먹어라.”


원자력 발전 문제도 똑같다. 우리 모두 이미 안다. 지금의 신재생 에너지 기술로는 원전을 당장 대체할 수 없다. 십 년이 지나도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원전이 위험한 것을 알고 원전을 사용하는 나라와, 그걸 모르고 사용하는 나라의 십 년 뒤는 딱 그만큼 다를 수밖에 없다.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다르다. 의외로 ‘모르고 그랬어’라는 변명보다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라도 말하는 사회가 더 건강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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