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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Jan 29. 2020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사람은 사람으로 변한다


영화는 조제와 주인공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 분)’의 여행 사진으로 시작한다. 종반부를 거치며 영화는 여행 사진 속 조제와 츠네오가 어떤 여정을 거쳤는지 보여준다. ‘바다에 가자.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 졌어.’ 불완전한 존재였던 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를 알게 되고 함께 여행을 떠나며 비로소 성장한다.


사람이 변하나? 사람은 고쳐 쓰는 것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근묵자흑이란 말도 있다. 나도 사람이 변한다고 믿는 편이다. 사람이 가변(可變)의 존재라면 그 촉매(觸媒)는 무얼까. 마찬가지로 사람이다.


조제는 과거의 자신을 조개로 비유한다. 츠네오와 헤어지게 되면 조개처럼 그저 바다 밑을 굴러 다니게 될 것이라 말한다. 과연 조개와 조제는 닮은 구석이 있다. 조제는 유모차에 몸을 맡겨야 어디로든지 갈 수 있는 존재고 조개 역시 파도에 몸을 맡겨야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


츠네오 역시 불안한 존재였다. 도박장의 딜러로 일 하면서 꿈도 미래도 없다. 나중에 조제, 츠네오와 삼각관계를 이루는 카나에(우에노 주리 분)는 사회복지 분야로 장래를 꿈꾼다. 츠네오는 그런 카나에를 그저 바라만 볼뿐이다.



빌린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조제와 츠네오. 조제는 내비게이션을 처음 보고 신기해한다. 츠네오가 내비게이션을 설명해주자 조제는 내비게이션의 여러 버튼을  맘대로 누른다. 그러자 당초 내비게이션에 설정되어 있던 목적지가 변경된다. 츠네오와 조제의 만남, 둘의 성장, 갑작스런 인생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나는  장면에서 잠시 영화 재생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라마다 영화에 담겨 있는 독특한 코드가 있다. 일본의 경우 장르를 불문하고 성장이라는 코드가 곳곳에 녹아들어있다. 이는 일본 토착 신앙 '신토(神道)'의 상대주의적 선악 개념과 무관치 않다.


기독교나 유교와 달리 신토의 선악에는 절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토에서 선은 생명력이 심화되는 것이고 악은 생명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일본 전역에 남아있는 '마츠리(祭り)' 풍습도 고갈된 생명력을 회복하는 의례다(박종천, 소녀가 세상을 구한다, 2016). 일본 영화에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성장이 곧 생명력의 증진이기 때문이다.


조제와 츠네오는 서로를 만나 각자의 생명력을 증진시킨다. 조제는 마음속에 존재하던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 즉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유모차에서 벗어나 휠체어로 자신이 향하는 바를 향해 나아간다.


츠네오는 도박장에서 대리 도박을 하던 과거의 방황에서 탈피해 번듯한 직장을 갖게 된다. 결국 조제를 떠나게 되는 츠네오지만 - 영화에서는 '도망쳤다'는 독백으로 처리된다 - 그에게 돌을 던지는 관객은 없다. 둘의 만남과 헤어짐이 둘 모두의 인생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신토적 문화 감수성이 일본인보다 부족한 우리에게도* 이 영화의 내러티브가 공감을 얻은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도 다름 아닌 생명력이 필요해서 아닐까.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변한다. 변한다는 것의 범주에는 생명력을 얻는 일도 포함된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으로 변한다는 말은 이렇게 변용될 수 있겠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도 사람이다.'






*일본의 신토 상대주의적 윤리관과 달리 우리나라는 성리학 절대주의적 윤리관념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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