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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Jun 21. 2020

인권 총량의 법칙?

인권의 배타성과 노예도덕

가장 수구적인 언행은 가장 세련된 꼴을 가장하여 출현한다. 이들은 체제의 2등시민으로서 주어진 권리라도 수호하기 위해 노예 도덕이라는 갑옷을 껴입고 짐짓 세상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세련된 주장을 하는 낙타의 모습으로, 행동하는 개돼지들을 가르치려 든다.


이를테면 BLM(Black Lives Matter) 집회에 지지의 뜻을 보내는 아시안에게 이들이 취하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흑인들도 동양인들을 차별하는 마당에 아시안들이 왜 그들의 집회를 지지하느냐, 당신들은 배알도 없느냐. 혹은 집회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며 집회의 본질을 호도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저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흑인이 동양인들의 인권을 무시하니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자는 주장을 하면서도, 그렇다고 아시안들의 인권을 위해 스스로 무엇 하나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흑인이 아시안들을 차별하기에 집회에 나가기 싫은 것이 아니라, 이들은 그저 집(集)하여 회(會)하는 행위 자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원체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한 이들이라, 누군가의 적으로 뛰쳐나가는 광장의 주체로 살아본 경험도, 그럴 의지도 없는 사람들이다.


"흑인들 집회에 동양인들이 왜 참여하냐"는 그들의 일갈은 이전에도 유사한 형태로 한국 사회에 자주 나타났다. 페미니즘 집회에 남성들이 뭣하러 참여하느냐, 대공장 '귀족노조'의 집회에 뭣하러 연대하느냐, 학생인권을 보장하면 교권이 추락한다, 세월호 유가족은 불쌍하면서 천안함 희생자들에게는 왜 관심이 없느냐, 대체로 이런 식이다.


그들은 인권에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인권의 종류를 분별하여 각 종류별 인권이 서로에게 배타적으로 작동한다고 믿는다. 기득권 버번 전략(Bourbon Strategy60년대 공화당이 미국에서 정권을 되찾기 위해서 인종차별적 발언과 정책으로 흑인 사회의 감정을 자극하고, 백인의 우월감을 부추긴 '남부 전략'을 일컫는 것. 그리하여 각기 다른 집단으로 나뉜 국민들이, 1%의 부유층이 아닌 서로를 향해 비난을 퍼붓도록 하는 '분할 통치'가 전략의 핵심.)의 스피커가 되어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보위하고 체제가 주는 달콤한 소속감에 자기 위안한다.


그들은 철도노조의 민영화 반대 파업을 두고 정치적 목적을 둔 불법 파업이라 비난하면서, 정작 철도노조가 임금 올려달라고 파업하면 배 부른 파업이라 욕한다. 행동의 목적이 아니라 행동 그 자체를 싫어하는 자들의 문법이 통상 이런 식이다.

미국 사회에서 동양인에 대한 차별은, 아시안이 흑인들의 집회에 연대해서 심화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아시안이 행동하지 않아서 차별이 있을 뿐이다. 더 나아가서, 백인들이 흑인들을 차별하지 않는 사회에서 더 이상 흑인들도 아시안들을 차별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은 스스로 비겁함을 알아서 조금은 비겁했지만, 스스로의 비겁함을 통째로 모른 채 '비켜서 있는' 이들은 과연 조금만 비겁한 일일까.




#조지플로이드 #B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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