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 Jun 30. 2020

<타이타닉> 사람은 변한다

타이타닉, 제임스 카메론

8학기 동안 들은 전공 수업 중 교직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전공이 한문학인지라 교직 수업에서도 공자, 맹자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날은 조를 나눠 성선설과 성악설을 두고 토론했다. 사람의 본성은 착하니 나쁘니 열띤 논쟁이 끝나고 교수님이 토론을 정리하실 무렵이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공자와 맹자는 사람의 선한 본성이 변치 않도록 교육이 필요하다 주장했습니다. 반대로 순자는 사람의 악한 본성을 고치기 위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요?"

"바로 그겁니다. 사람의 본성이 착하냐 나쁘냐를 두고 오늘날까지 떠드는 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맹자와 순자 모두  본성의 가변성 때문에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이 중요한 거겠죠? 오늘 토론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람에 대한 생각. 사람이 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람이 변치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나는 진보냐 보수냐를 나누는 기준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플라톤을 시작으로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철학자들은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무게를 두었다.


인간의 종류를 나누고 그에 따른 직분을 부여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주장도 사람이 변치 않는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것이다. 베르그송의 시간 개념을 이어받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는 주장을 펼친 들뢰즈가 '망치의 철학자' 니체의 영향을 받은 것 역시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글의 제목에서부터 눈치를 챘겠지만 글쓴이는 사람이 변한다고 믿는 쪽이다. 그것이 맞기도 하지만 그렇게 믿음으로서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다 생각한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범죄자를 종신형에 처하게 하거나 사형시켜야 하는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이 변한다는 명제를 믿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찬 나라의 감옥에는 처벌만 있고 교정은 없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세상에 토론도 교육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 누군가와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라.


로즈(K. 윈슬렛 분)를 사랑한 잭(L. 디카프리오 분)은 그녀에게 침 뱉고 천박한 춤추는 것부터 가르쳐 그녀의 인생을 변화시킨다. 사랑은 누군가 변한다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면 사랑도 필요가 없는 세상이 찾아온다. 결국 모든 사랑은 정반합이다. 백일 천일 사랑한 사람이 날 만나기 전의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면, 화분의 물 주듯 사랑한 사람의 마음은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공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람은 날 만난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게 똑같이 대해주고 있어요' 낭만적인 말이지만 공허하다. 상대방의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사랑은 상대방의 어느 부분에도 내가 들어서지 못했다는 뜻이니. 물론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가 마음에 들어 그 사람이 변하지 않도록 지키는 것도 사랑이다. 요지는─ 사람이 변한다는 사실에 있다.




사람은 변한다. 쉽지는 않다.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라는 말을 되새겨 본다. 이 말은 본디 사람을 못 고쳐 쓴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사람 고쳐 쓰기 어렵다는 뜻일 뿐이다. 겨우겨우 고쳐 써도 고마운 것 하나 모르는 게 사람이므로, 고쳐 쓰지 말라는 말에 가깝다.


오직 변한다는 사실 하나만이 변하지 않는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깨우치라는 훈화로 글을 맺으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사람은 변한다.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더라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으로 변치 않게 더욱 사랑해야 한다. 사람이 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득 찬 세상은 그래서 사랑이 가득 찬 세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콜미바이유어네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