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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너 Jul 31. 2024

최수진,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채우는 배우

2024-04-05, 최수진 인터뷰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고 해서 제 에너지가 소모되지는 않아요. 오히려 계속 채워지고, 제 안의 활력을 끌어올려주거든요. 살아 숨쉬는 원동력이 되어준다고 해야 할까요. 매회 공연이 끝날 때마다 정말 좋고, 재미있어요.


ⓒ서울자치신문


행성에서 탈락한 명왕성마냥(지극히 문과적인 서술임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슬프게도 공휴일에서 쫓겨나버린 식목일. 오후 반차를 쓰고 인터뷰를 하러 가면서 생각보다 최수진의 작품을 꾸준히 봐왔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본 게 아마도 <어쩌면 해피엔딩> 때였으니까(잠깐, <살인마 잭>을 봤을 때 캐스팅이 누구였더라? 유준상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유준상 엄기준이나 유준상 김무열로 봤을텐데...) 그때부터 매년 최소 1~2작품 이상은 무대 위의 최수진을 계속 봐왔던 것 같다.


내게 최수진은 믿고 보는 배우의 범주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넘버 소화력이 좋고, 사랑스럽고 어른스러운 역할 사이의 밸런스를 잘 찾아가는 배우라서 필모그라피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클레어, <사의 찬미>의 윤심덕, <록키 호러 쇼>의 자넷 와이즈, <맨 오브 라만차>의 알돈자, <킹 아더>의 모르간, <리지>의 앨리스 러셀, <지킬 앤 하이드>의 엠마, <라흐 헤스트>의 김향안, <오펀스>의 필립, <렛미플라이>의 선희, <아가사>의 아가사 크리스티, <여기, 피화당>의 가은비, 그리고 <웨스턴 스토리>의 조세핀 마커스까지. 내가 봐온 그의 필모만 쭉 늘어놓았는데도 그 다채로움이 느껴질 정도인데, 어떤 역에서도 크게 아쉬운 소리가 나온 적이 없다. 안정적으로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해석하고, 소화해서, 자기 걸로 만들어 몸에 철썩같이 잘 입는다는 소리다. 



식목일 주간에 최수진의 인터뷰를 추진한 것 역시, 그의 스펙트럼이 한 축 더 넓어져가는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였다. 최수진은 그 무렵, <여기, 피화당>의 가은비와 헤어질 준비를 하면서 <웨스턴 스토리>의 조세핀으로 새로 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배우들에게 얼굴 갈아끼우는 거야 직업적인 스킬이고, 평생을 해나가야 할 과업이라고는 하지만 가은비와 조세핀은 달라도 너무 다른 인물들이었기에 두 인물을 오가며 살고 있는 최수진의 마음 속이 무척 궁금해졌다는 게 인터뷰를 추진한 이유였다. 물론, 최수진 정도 되는 베테랑 배우가 그 두 인물 사이를 오가면서 가은비/조세핀을 입고 벗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느낄 것이라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궁금해할 수 있지 않은가. 기자도 관객이다. 그리고 난 동시에 훌륭한 오타쿠다.


마침 날이 좋았기에 대학로 여기저기서 사진을 먼저 찍으며 사소한 대화를 조금씩 나눴다. 포토 친구가 소품으로 가져온 카메라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최수진은 자기도 취미로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오, 카메라 사서 한 번 시작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죠. 그런 식의 대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하는 성격이라 어려울 것 같다고. 그 순간, 내가 무대 위에서 다양한 역할의 옷을 입고 있는 최수진을 꾸준히 봐오면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그의 어떤 코어가 훅하고 느껴졌다. 영리하고 이지적이며, 똑부러지게 똑똑하고 단호한 인간 최수진의 퍼스널리티.


ⓒ서울자치신문


인터뷰에 싣지 않은 문답이 하나 있다. "예전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최수진 이름 석자만 보고도 관객들이 믿고 보러 올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지금의 자신은 그 목표를 얼마나 이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라는 질문에 대한 최수진의 답이다. 인터뷰 후, 최수진의 조세핀을 보러 <웨스턴 스토리>를 몇 번 더 보러 갔다. 그리고 이제 그의 차기작이 뜨기를 기다리며 여전히 조용히 응원하는 중이다. 나는 정말이지, 영리하고 똑부러지는 배우가 좋다. 


본인이 본인을 평가하기가 아무래도 좀 어렵죠. 50 대 50일까요? 여기엔 관객분들의 성향도 좀 있는 것 같고, 누구와 같은 배역으로 캐스팅이 됐느냐도 중요하고(웃음). 제가 관객 입장이라고 가정하고 생각해봐도 그래요. 하루밖에 못 가는데 트리플이라고 쳐요. 그러면 셋 중 하나를 정말 고심해서 골라야 하잖아요. 아무리 저를 믿고 계신다고 하더라도 '이 역할은 다른 배우가 기대가 돼' 하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죠. 그래서 상황에 따라 다르고, 작품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50 대 50이죠. 너무 욕심을 갖다보면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생길 수도 있는 법이고요. 항상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잘해라, 수진아. 관객들은 네가 한다고 무조건 다 보러 와주시는 게 아니야.' 


▶최수진 인터뷰 전문 보러 가기

[캐스팅보드] 최수진, “웨스턴 스토리, 겁 잔뜩 먹고 시작했더니 오히려 괜찮더라고요”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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