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누워 쓰다

처음으로 인천공항에서 노숙하고 있는 중기

by 밋너

인천공항 의자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일은, 적어도 내 인생에서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선천적 게으름쟁이라 언제나 여유를 두고 움직이기 보다는 시간에 간당간당하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서 아침 비행기를 탈 때도 딱 두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는 경로를 선호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인천공항 3층 출국장 의자에 누워 멍하니 이 글을 두들기고 있다. 내가 부지런을 떨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니고, 오늘-그러니까 23일 오전 출발한 티웨이항공 TW251편이 신치토세 위를 빙글빙글 한시간 쯤 돌다가 하코다테에 임시 착륙한 뒤 네 시간이 지나서야 회항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회항을 결정하고도 서류 수속 등으로 한참을 꾸물대던 비행기는 8시 20분에야 인천에 도착했다. 꼬박 9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낸 사람들은 지쳐서 얼른 나가 땅을 밟고 싶어했으나 면세품 반납, 탑승동 이동을 위한 버스 대기 등 기다려야할 일은 너무 많았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결국 그 잠시간의 시간 동안 한 비행기를 탔던 사람들이 온전히 헤어진 건 밤 10시가 다 되어서였다. 물론 그 비행기에는 내가 타고 있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비행기란 건 참 신기하고 짜증난다. 이런 거대한 철뭉치가 사뿐히 구름 위를 난다니. 분명 인천에서 출발해 신치토세 위를 빙글빙글 선회할 때까지만 해도 쏟아지는 햇살에 뺨이 뜨거웠는데 그 아래는 폭풍설이 쏟아지고 있었던 거다. 삿포로는 50년 만의 폭설에 모든 게 마비됐고 신치토세 공항엔 발이 묶인 3천여 명의 사람들이 노숙 중이라고 한다. 오늘 회항한 우리 비행기는 내일 아침 9시 반 보항하기로 결정했다. 내일부터 저기압이 물러가서 홋카이도의 날씨는 얌전해질 예정이라지만 글쎄.


운좋게도, 그동안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나다니면서 이런 종류의 액시던트를 겪지 못했다는 게 새삼스러운 축복처럼 느껴진다. 눈발이 90센티나 쌓여있다는 삿포로를, 노숙까지 하면서 가야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다가 포기했다. 비행의 과정이 그토록 극심하게 고통스러운데도-지루함은 고통이다-나는 왜 어딘가에 가기 위해 번번히 이런 수고스러움을 감내하는가. 휴가 때마다 기어코 생돈을 들여 어딘가로 떠나려하는가. 나는 매저키스트인가?



차라리 하코다테에서 내렸더라면 좋을텐데... 임시착륙한 비행기에 갇혀 하코다테 국제공항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JR 특급 호쿠토의 예약을 바꾸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려했지만, 원래 예정지가 아니었던 터라 공항은 우리 비행기에 임시가 아닌 정식 착륙은 허가하지 않았다. 한 세 시간 동안 지속되던 내 고민도 그냥 헛짓이 됐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다 읽었고, 이 책은 곧 짐이 되었다.


아아. 여행이란 이토록 번잡스러운 것이었지. 그래 마치 삶처럼. 이제 내일의 비행을 위해 잠시 눈을 붙일 시간이다. 입 돌아가면 어쩌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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