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온 더 비트>가 온 이유, 연극 <온 더 비트> 리뷰
* 스포일러 없습니다
* 서울자치신문 공연 섹션에 기고한 리뷰입니다.
극의 시작을 알리는 암전과 함께, 사방에서 조용히 계속되던 소음들이 한 순간 멎고 어느새 거대한 정적이 우리를 감싼다. 정적을 깨는 것은 작게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일정한 비트의 ‘두드림’. 스포트라이트가 켜지고, 한 소년이 의자에 앉아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른다. 손과 발, 허벅지, 더 나아가 자신의 몸을 악기 삼아 한참을 빠르게 더 빠르게 두드리던 소년의 몸짓이 멎고, 그가 고개를 들면 우리는 그 소년의 세계로 끌려들어간다. 소년의 이름은 아드리앙, 세상을 소리로 감각하는 그를 주변에서는 ‘드럼에 미친 또라이’라고 부른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 이어, 프로젝트그룹일다㈜가 또 한 번 선보인 1인극 ‘온 더 비트’는 아드리앙(강기둥, 윤나무 분)과 그의 세계인 드럼에 대한 이야기다. 아드리앙은 이웃집 마당에서 들리는 농구공 소리와 엄마가 칼질하는 소리가 빚어내는 소리의 합주에서 그의 세상을 일깨우는 ‘리듬’을 발견한다. 리듬으로 구축된 세상을 가장 완벽하게 조형하기 위해 아드리앙은 무의식적으로 ‘두드릴 것’을 찾아 다 쓴 세제통을 소중히 끌어안는다. 그리고 다 쓴 세제통에 머물러 있던 아드리앙의 세상은 착한 아이가 되기로 약속하고 성실히 수행한 대가로 얻은 낡은 드럼세트, ‘티키툼’과 만남으로 급격히 확장된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명확하다. 자신과 드럼, 둘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소년 ‘아드리앙’을 연기하는 두 명의 배우 강기둥, 윤나무의 열연이다. 어쩌면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는 표현은 부족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극장에 들어가 객석에 앉아 비트와 만나는 순간 두 배우가 연기하는 아드리앙이라는 인물이 우리 심장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온다. “그래서 드럼이 내게 온 것”처럼, 아드리앙은 그렇게 우리에게 온다.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텅 빈 무대지만, 극을 보다 보면 어느새 그 공간에 두 배우가 그려내는 무수히 많은 인물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드리앙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배우가 직접 치는 드럼의 비트에 맞춰 흘러나오는 수많은 명곡들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찰리 파커, 빌 에반스, 냇 킹 콜, 제임스 브라운부터 메탈리카, 너바나, 라디오헤드, 그리고 이매진 드래곤스까지, 아드리앙의 이야기와 감정에 어우러져 풍부하게 몰아치는 음악의 향연은 ‘온 더 비트’만이 줄 수 있는 강렬한 매력이다.
비트와 음악, 소년의 이야기가 뒤섞여 흐르는 100분의 시간이 끝나갈 무렵, 이야기의 종결과 함께 뒷통수가 얼얼해질 정도의 충격이 심장을 직격하는 경험과 함께 극장을 나서면 그 후 남는 것은 귓가를 울리는 드럼 비트와 짙은 여운을 남기는 아드리앙의 목소리뿐이다. 연극 ‘온 더 비트’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 TOM 2관에서 내년 1월 1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