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버린 생의 흔적, 이상을 쫓아. 뮤지컬 <스모크>
* 기존에 썼던 글들을 백업 중입니다.
* 스포일러 없습니다.
* 2020년 3연 당시, 서울자치신문 공연 섹션에 기고했던 리뷰(원문 링크)입니다.
천재 시인 이상. 그의 난해하고 실험적이며 모호한 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한 번쯤은 이해해보려 노력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요절한 천재, 그가 남긴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하고 실험적인 시. 이 두 가지 문장만으로도 이상은 그가 죽음을 맞이한 1937년 4월 17일 이후 지금까지 우리 문학사에 가장 신비로운 시인으로 박제됐다.
지난해 12월 4일 개막한 뮤지컬 <스모크>는 바로 이 인물, 우리에게 가장 신비롭고 난해한 시인으로 박제된 천재 이상을 무대에 불러올린다. 2016년 트라이아웃, 2017년 초연, 2018년 재연에 이어 어느새 세 번째 시즌을 맞는 이 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협 속에도 꿋꿋하게 다시 한 번, 이상의 이야기를 반구형 무대와 다채로운 조명,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이 시대에 풀어 놓는다.
시작과 함께 어딘가에 감금된 채 쉴 새 없이 기침을 터뜨리는 남자가 등장하고, 대사와 넘버가 이어지면 우리는 그 순간부터 이 남자가 이상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굳이 일본 도쿄에서 불령선인(불량하고 불온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으로 일제 강점기 당시 식민통치에 반대하던 조선인들을 지칭하던 용어)으로 체포돼 경찰서에 구금됐던 이상의 이야기를 모른다 하더라도 그가 시를 쓰는 사람이며, 그가 부르는 노래에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는 가사 한 구절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뮤지컬 <스모크>는 이상의 시처럼, 우리가 ‘알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알 수 없게 흘러간다.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 하면서도 시를 쓰는 남자 ‘초’(김재범·에녹·김경수·임병근·장지후)와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는 소년 ‘해’(강찬·최민우·김태오·강은일), 그리고 신비로우면서도 강인한 인물 ‘홍’(장은아·이정화·허혜진)이라는 세 명의 인물이 무대에 등장해 서로의 감정을 부딪쳐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는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추상적인 단서들과 모호한 상징들, 엇갈리는 대화의 흐름을 따라 이들의 정체와 갈등의 이유를 쫓다 보면 극이 진행되는 110분의 시간은 금세 흘러간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의 예술인으로서, 그리고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시를 쓰는 괴짜로서 살아가던 이상의 머릿속을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해받고 싶었으나 이해받지 못한 시인의 절망, 세상과 발맞출 수 없는 대신 날고 싶었던 시인의 희망 너머에는 그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바다’가 있다. 그리고 뮤지컬 <스모크>의 무대 위에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그저 예술가, 미완의 박제로 천재를 꿈꿨’던 이상의 짧고 강렬했던 생이 타버린 흔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