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OA>
지난주 많은 팬들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OA의 종영 소식을 놓고 분개했다.(이 포스팅의 초안은 2019년 8월에 작성됐다.) 시즌2에서 손꼽아 다음 시즌만 기다리게 할 훌륭한 피날레를 선보인 드라마를 갑자기 캔슬한다니, 팬들의 기대를 너무 심하게 깨부순 나머지 어떤 이는 갖고 있던 넷플릭스 주식을 모두 팔았다고 하는데 그의 사회적 지위를 미뤄보아 아마 상당한 양의 주식을 팔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실제로 적잖은 돈까지 손해를 보아가며 분노를 표출할 정도로 화가 난 팬들이 넷플릭스에 직접 종영 이유에 대해 문의한다 하더라도 다른 모든 글로벌 플랫폼 회사들이 그러하듯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며 그 이유는 너희는 몰라도 된다’는 답변을 주겠지.
한 줌(?)의 팬덤이지만 OA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종영 소식에 크게 실망한 이유는 이 드라마가 SF팬들에게도, SF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큰 마음의 울림을 주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부터 피를 토하는 처돌이의 심정으로 OA가 왜 훌륭한 드라마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우주와 미래가 없는 SF
보통 많은 SF 창작물에서는 배경을 미래 시대로 설정하거나 우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현실 세계가 아니어야 앞뒤가 맞지 않고 실제로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가상의 과학 기술을 펼쳐 보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OA에는 우주나 미래 배경이 등장하지 않는다. OA의 배경은 서로 다른 차원의 평행 우주를 전제로 한 인간의 정신 속이다.
SF는 필연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없다면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어렵다. 가상의 공간과 가상의 기술을 엮어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가상의 존재들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당위성을 먼저 제시하지 않는다면 독자나 시청자가 ‘왜 이렇게 되는 거지?’라는 의문을 품게 되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 인간들이 가질 수 있는 주제의식은 대부분 인간 혹은 인간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디스토피아나 유토피아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혹은 인간성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인간성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 준다.
OA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배경을 제시하는 셈이다. 인간의 정신에 대해 탐구하는 과학자가 빌런으로 등장하고, 주인공들은 과학적인 듯한 동시에 컬트적이기도 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신세계(정확히는 임사 세계)를 확장하고 각각의 차원에서 존재를 증명하며 빌런에 맞선다. OA는 본래 총 5 시즌으로 구성돼 있었고 한 시즌마다 우연히 한 자리에 모이게 된 5명의 인물 중 한 명의 임사 체험 세계를 배경으로, 각각의 세계가 평행우주로 구성되어 각 세계에서 주인공들이 서로를 찾아내는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우주나 미래 세계가 아닌 ‘서로의 세계’를 배경으로 인간들의 연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웅 없는 서사
제작자이자 주연 배우인 브릿 말링은 자신의 SNS에서 OA 캔슬 소식을 알리며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는 영웅 같은 것은 없다고 상상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나무나 문어에게도 할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인간이 가장 지혜롭게 진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은 OA지만 드라마는 OA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이야기를 최소한 한 번씩 조명하고, 구심점이 되는 캐릭터는 있지만 중심이 되는 인물이나 그를 받쳐주는 역할들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있고 그 서사들이 엮이며 하나의 큰 이야기 줄기를 구성한다. 구원을 가져오는 영웅은 없고 서로가 서로의 구원이 되는 관계도 아니다. OA는 나 외의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는 방법을 찾아낼 때, 내가 생각지 못한 방법을 배우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이 구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웃캐스트들의 이야기
OA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사회의 비주류들이다. 햅에게 납치돼 온 사람들은 장애가 있었던 입양아 OA를 비롯해 노숙자, 실패한 운동선수 등 각자 인생의 좌절에 맞설 방법을 강구하던 사람들이었다. OA의 이야기를 듣고자 모인 사람들도 모두 각자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받지 못할 약점을 가지고 있는 구성원들이다.
그들은 우연한 계기로 한 자리에 모였고, 서로 접점도 없고 서로 함께 해야 할 필연적 이유도 없는 인간들이지만, 그래도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고 서로를 알게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계속 함께 해 나가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한다. 왜냐면 아픔은 겪어본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 지점에 가 본 사람들만이 서로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종류와 모습은 각각 달라도 아웃캐스트들만이 서로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인생에서 고통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인간은 어떤 면에선 모두 아웃캐스트들이다.
결론
그러니까 OA는, 전례 없이 독특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사람 간의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신이 언젠가 어떤 나락으로 떨어질 때 당신을 구해줄 수 있는 것은 ‘the right one’이 아니다. 당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낙하의 순간에 타인을 향해, 바깥세상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는 당신의 용기다. 미스터리 한 설정과 복잡하게 깔린 복선들을 헤치고 나아가며 OA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단 한 가지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