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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night and Jun 28. 2020

목숨의 무게

MBC <붉은 달 푸른 해>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소수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수단이나 매체를 단 하나도 가지지 못한, 말 그대로 약자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성인이 아닌 – 자신의 권리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전달하는 능력조차 취약한 아동이라면 어떨까.


<붉은 달 푸른 해>는 아동 학대에 관한 이야기다. 아동 학대라는 비극적 소재에 꽤 잘 짜인 서스펜스 연출을 가미하고, K-드라마에 빠질 수 없는 ‘막장’ 가족 관계와 감정 표현이 돋보이는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시청자의 몰입을 돕는다.            



처음 드라마를 봤을 때는,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아동 학대 묘사가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라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곧장 인터넷에서 ‘4명 일가족 동반자살’이란 헤드라인을 보게 됐다. 한국은 아직도 부모가 친자를 살해해도 ‘동반 자살’이라 불러주는 사회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한 명의 목숨으로 제대로 취급받지 못하고,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과연 무엇이 극단적인걸까.


긴 회차에 걸쳐 드라마에서 전하고자 하는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는, 아동 학대는 피해 아동이 성인이 된다고 해서 그대로 증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대 받은 아이는 자라서 의지가 생기고 힘이 생겼을 때 다른 이에게 자신이 당한 폭력을 전가하는 성인이 된다. 복수심의 무서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학대 피해자에게 세상은 곧 폭력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피해 아동이 자라 타인을 해치는 또다른 가해자가 되는 모습을 집중 조명해 보여준다. 설령 폭력을 체화해 다른 이를 해치는 성인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트라우마는 쉽게 희석되지 않는다. 평생에 걸쳐 자신을 괴롭히는 학대의 이미지, 기억과 힘겹게 싸우며 일상이 조각나지 않도록 부여잡고 살아야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결말인데, 어떤 의도인지는 알겠으나 ‘정상 가족’의 신화에 얽매여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엄마에게 복수하지 않기로 한 우경의 결정은 학대의 사슬을 끊어내는 성숙함을 보여주지만 그대로 엄마를 ‘엄마’라 부르며 곁에 남는 모습은 부자연스럽다. 어쩌면 평생 억압에 길들여진 모습에서 아직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되려 자연스러운 피해자의 모습일 수도 있고, 어쨌거나 자신을 양육해주긴 했다는 사실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을 수도 있다. 갈등하고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하는 모습이 더 현실적일 수 있지만, 굳이 픽션 속에서 피해자가 가해자 옆에 남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동생을 죽였지만 자신에게는 엄마였던 모습도 있기 때문에 가족관계를 쉽게 끊어낼 수 없다는 입장, 학대자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에게 얽매인 정서적 사슬을 끊어내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은, 픽션만이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던 시청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부모는 부모다’라는 유구한 한국적 전통을 또 다시 강요 받는 느낌마저 든다. 드라마의 끝에는 외려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은 찝찝한 뒷맛이 남는다.            



어리다고 해서 인간이 아닌 것은 아니다. 노인이나 여성,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약자성을 가진 한 사람의 어엿한 인간이다. 어린 아이는 아무것도 몰라서, 우리도 한 때 아이였기 때문에, 아이가 우리의 미래기 때문에 우리가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가? 그런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이유는 아동 인권의 근간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유아도 어린이도 모두 성인과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아동의 인권이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인권이란 살아온 나이만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3년을 산 아이의 인권이 30년을 산 어른의 인권보다 가볍지 않다. 앞으로 살 날이 많기 때문에 아이의 생명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수명이 긴 사람일수록 더 ‘많은’ 인권을 가져야 한다. 어떻게, 어떤 모양새로 태어났던 간에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은 누구나 인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간단하고 당연한 명제지만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상기하고 다시 되짚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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