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아침. 간밤에 아무리 조금밖에 못 자더라도 아침을 맞이하는 것에는 단련이 돼 있는 직장인 두 명은, 휴대폰 알람소리에 군말없이 기상해, 수영복 위에 겉옷을 걸치고 얼굴과 팔다리에 썬크림을 잔뜩 발랐다. 발리인지 보홀인지 다녀온 민주는 이미 등껍질이 다 벗겨져 있었다. 나는 선크림을 쭉 짜서 울긋불긋하게 벗겨진 민주의 등에 치덕치덕 문질러줬다. 마치 기상미션을 하는 유튜브 자컨 속 아이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침.. 꼭 먹어야 하는걸까...?"
"그치만 혜진님하고 서영님이 이미 식당에 가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공복에 배타면 멀미해요."
"지금 뭐 먹으면 토할 것 같아요."
"일단 가보자..."
라며 홍콩역 역사 건물에 도착해 들어가니, 슬슬 가게 문들이 하나둘 열리기 시작하며 팀호완도 손님을 받고 있었다. 우리의 오전 동선은 여기서 아침을 먹고, 역사 건물에 있는 마트에 가서 배 위에서 먹을 간식과 술을 쇼핑하고, 그걸 들고 홍콩역 바로 앞에 있는 보트 선착장에 시간 맞추어 도착하는 것이었다. 팀호완에 홀로 앉아있는 혜진을 만났다.
"아니 서영님은 어디 갔어?"
"서영이는 오늘 대학 친구들 만나서 관광하는 일정이에요. 친구들 데리고 파티 오고 싶었는데 거기 동기 모임에 일본애가 자기는 소심해서 낯선 사람들하고 못 논다고 거절했대."
"아니 그럼 혜진님은 서영님하고 같이 놀러다닐 것도 아닌데 왜 일정 맞춰서 따라온거야?"
"숙소비 뿜빠이 하면 저렴하잖아. 서영이가 잡은 호텔방 같이 쓰려고요."
평소에도 일 잘하는 사람들은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다.
꼭 먹어야 하는 것들이라며 팀호완 메뉴판에 이것저것 체크하고, 나는 그 와중에 딤섬은 무 떡이 맛있지, 라며 하나 둘씩 연필로 체크 표시 해 나가다보니 무슨 잔칫상처럼 가짓수가 많아졌다. 토할 것 같다던 민주는 먹으니 또 들어간다며 접시를 하나씩 비워 나갔다. 딤섬을 두둑히 먹으니 피로가 풀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트에서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아, 가이드 노릇하는 혜진에 대한 보답의 표시로 나와 민주가 사겠다며 카드를 긁으려는데 한국인 전통의 계산대 싸움이 일어났다. "왜 사!"라고 소리 지르며 우리 손을 내려치는 혜진을 피해 계산을 마치고, 멀미약까지 사들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선착장은 홍콩역 바로 앞이었다. 각양각색의 수영복과 비치웨어를 걸친 사람들이 거대한 아이스박스와 튜브를 들고 뒤엉켜 있었고, 배들은 마치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처럼 1분에 한 대꼴로 들어왔다가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는 휑하니 떠났다. 우리는 모이기로 한 볼라드 넘버 앞에 섰다. 한쪽에서는 하얗고 매끄러운 바디를 자랑하는 최신식 요트 위에 유니폼을 갖춰 입은 크루들이 정중하게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샘 스미스 분장대회처럼 차려입고 온 다인종 게이들이 우루루 올라타는 요트, 단출한 아시안 가족이 통째로 전세 낸 듯한 럭셔리 보트가 보일 때마다 설레기 시작했다. 우리가 합류한 파티는 센트럴 근처 어딘가의 크로스핏짐 코치 몇명과 회원들이었다.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고 잠깐 스몰토크를 하다 보니 우리 볼라드 앞에 배 한대가 들어왔다. 이 배를 타면 된다고 했다. 원래 진짜로, 고기잡이 배인 것 같았다. 꼬질꼬질하고 오래된 목선이었고 선원들도 어촌 마을에서 갓 알바 나온 청년들 같은 차림새였기 때문이다. 하차 벨을 누르고 문이 열리자마자 튀어 나가야 하는 만원 버스처럼, 우리는 각자의 짐과 튜브를 가슴에 안고 배 위로 몸을 날렸다.
배가 선착장의 볼라드를 벗어나 검은 매연을 뿜으며 바다로 나아가자마자, 혜진과 민주는 미처 칠링도 되지 않은, 마트에서 사 온 샴페인을 꺼냈다. '뻥!' 소리가 낡은 엔진 소음을 뚫고 울려 퍼졌다. 민주는 F1 레이스를 우승한 드라이버처럼 바다를 향해 코르크를 날려 버리고 거품이 올라오는 병을 잡고 웃었다. 다 헤진 옷을 입은 앳된 얼굴의 선원들은 첫 정박지를 정말 대충, 쓰레기와 하수가 아직 채 쓸려가지도 않은 가까운 곳에 정했다. 사람들이 뭐 이런 데에서 수영을 하라는 거냐고 화를 내고 코치들하고 선원들이 스마트폰으로 뭘 찾으며 뭐라뭐라 이야기 하더니, 그제서야 다른 배들과 고급 요트들이 빽빽히 들어선, 군청색의 맑고 차가운 물이 있는 바다까지 다시 배를 움직였다.
혜진과 민주는 배가 두번째 정박지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샴페인 두 병을 마셨다. 혜진은 물놀이를 좀 하는 듯 하더니 낮잠만 한 세 시간을 잤고, 배가 센트럴의 항구로 돌아갈 때가 돼서야 깨더니 숙취 때문에 머리가 깨질것 같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더니 또 저녁에 술 약속이 있다며 샤워 티슈로 몸을 구석구석 닦았다. 민주는 튜브에 누워 있다가 혼자 표류할 뻔 했다. 바다는 정지된 수영장이 아니라, 조류라는 거대하고 보이지 않는 일방통행 에스컬레이터였다. 파티의 호스트이자 많아봐야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하얀 비키니를 입은 코치에게 어느새 수평선의 점이 되어버린 민주를 가리키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바다로 몸을 던져 폭발적인 스트로크로 민주를 향해 돌진했다. 순식간에 민주의 튜브를 낚아채더니, 튜브째로 잡고 물살을 갈라 배까지 인양해왔다. 이래서 사람이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나는 가까이에 다른 배도 많으니까 정 안되면 제일 가까운 아무 배에라도 타야 하지 않을까, 정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멀미약과 술을 같이 복용하는게 좋지 않은 선택지라 생각했고, 취해서 수영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점심 식사 시간까지 입에 술을 대지 않았다. 모든 대형 튜브를 종류별로 다 타고, '나는 물이 무섭지만 구명 조끼는 절대 입을 수 없다'며 포마드를 잔뜩 바른 머리를 한 인도계 남자 옆에서 '아니 그냥 한번 입어봐, 안 입고 물 무섭다고 소리 지르는 것보다 조끼 입고 수영하는게 훨씬 간지 살아'라고 조언하며, 구명 조끼에 몸을 의지해 차가운 바다에서 저체온증이 오기 일보 직전까지 발장구를 실컷 치고,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슬그머니 기울어질 때가 돼서야 아이스박스에 남아있는 맥주들을 꺼내 마셨다(이 때쯤에는 BYOB 의미 없이 아무나 아무거도 마셔도 되는 타이밍). 포항 과메기처럼 배 위에 널브러져 낮잠을 자는 사람들 사이, 비어있는 낚시 의자에 앉아 한바탕의 떠들썩함이 가라 앉은 짙은 푸른빛의 바다를 바라보며 배에서 틀어주는 음악을 들었다. SZA의 Kill Bill이 나왔는데, 그 앨범 커버 사진 속 바다와 똑같은 색의 물결이었다. 그 앨범 커버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파파라치 사진을 오마주한 것이다.
20대의 나는 1년에 두세 번씩 홍콩을 찾을 정도로 이 도시를 사랑했다. 왕가위 영화 속 눅눅한 멜랑콜리에 심취해, 이제는 전화박스는 없지만 캐슬로드를 걷거나 소호의 엘리베이터를 타며 청춘의 정서를 즐기곤 했다. 과거의 멜랑콜리 뿐이 아니었다. 그 시절 홍콩은 서울이나 도쿄보다 훨씬 앞서가는 감각의 최전선이었다. 미로 같은 골목 속에 숨은 브랜드 스토어들과 바를 찾아다니고, 리먼 머핀과 화이트큐브 같은 갤러리들을 돌며 아트 바젤에서 가장 주목받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구경했다. 하지만 화려한 스카이라인 뒤에 구룡성채 같은 대단지가 철거된지 얼마 안됐다는 사실을 알고, 일요일이면 쇼핑몰 앞 육교와 놀이터에 박스로 집을 짓고 모여드는 외국인 가정부들을 보게 되고, 우산혁명이 한창이던 시절 저녁 대규모 집회 전 지하철이 끊기기 전 인파를 뚫고 막차로 숙소에 돌아오는 경험을 하며, 모든 부조리의 결과물로 생산된 페이소스를 소비하고 즐기는 것에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타인의 고통과 도시의 몰락을 배경으로 낭만을 찾는 행위가 비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2016년이었던가, 그 후로는 홍콩에 가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돌아온 호텔, 나는 다시 수영복을 챙겨 홀로 옥상 인피니티 풀로 향했다. 민주는 회사 러닝 동호회에서 주는 챌린지 상품인 애플워치를 꼭 받아야 한다며, 런닝머신이 있는 헬스장으로 갔다. 정교하게 온도가 조절된 수영장의 매끄러운 민물은, 지나치게 차가웠고 소금기가 가득했던, 수면 아래에 뭐가 있는지 절대 알수 없는 수심의 해수와 비교하니 마치 목욕물 같았다.
2024년 다시 찾은 홍콩에서, 나는 더 이상 길을 잃으려 애쓰지 않았다. 왕가위의 흔적을 찾지도, 도시의 운명을 걱정하며 우울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혜진이 짜온 엑셀 칸에 맞춰 란콰이퐁의 밤을 유랑하고, 배 위에서 터지는 샴페인을 보고 깔깔대며 소리를 지르고, 일렁이는 조류를 바라보며 SZA를 들었다. 20대의 나에게 어쩌면 가장 중요했던 가치였을 나의 자의식은 이미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그 빈자리를 자본의 감각들이 채웠다. 한때는 도시의 '결'과 '서사'를 읽어내려 애쓰던 어린 탐미주의자는, 이제 그 모든 복잡한 맥락을 지우는 법을 배웠다. 너무 능숙하게 그 교육을 체화했다. 도시의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지 않을 권리, 그저 수면 위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표류할 권리를 돈으로 사고 나니, 홍콩은 나에게 아무런 감정적 부채도 지우지 않는 순수한 휴양지가 되었다.
나는 물 위에 몸을 띄우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귀까지 수면 아래 바트게 잠겼다. 발밑에 깔린 화려한 마천루의 불빛도, 그 뒤편의 눅눅한 슬픔도 나에겐 들리지 않았다. 구조적 비극과 타인의 고통에 중력처럼 끌리던 나는 어느새 무중력 상태의 속물로 자라났다. 이것은 내가 번 돈으로 구매한, 가장 고요하고 무책임한 평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