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 night and Jun 28. 2020

한 여자가 죽은 소녀의 이름을 찾아 나선다

다르덴 형제 <언노운 걸>

스포일러 포함


다르덴 형제가 감독한 <언노운 걸>에서 주인공 제니는 의사다. 동네의 개인 병원에서 몇 달 간 대리로 일하던 중, 진료 시간 종료 후 찾아온 방문객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가, 그 방문객이 근처에서 살해 당한 채로 발견됐으며 10대 소녀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본래 큰 병원의 전문의로 일할 예정이었던 그녀는 일자리를 포기하고 개인 병원에 머무르며 소녀의 본명을 찾아 가족들에게 알리고 장례를 치르기로 한다. 제니가 죄책감을 느끼는 대상은 살해당한 소녀 외에도, 개인 병원에서 자신과 함께 일하다 의대를 자퇴한 인턴도 있다. 그녀는 인턴이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진로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되돌아 갔다고 생각해서 그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계속해서 연락하고 집으로도 찾아간다.


영화의 초반부는 언뜻 이 사건에 대한 제니의 죄책감 이야기인 듯 싶지만, 사실은 그보다 인간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소녀와 인턴에 대한 제니의 죄책감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그녀는 이웃에게 헌신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되지만 희생과 헌신에서 보람을 느낀다거나 자신이 기여한 이웃들의 생활을 보며 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제니는 병원에 상주 하면서 불안정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24시간을 온전히 이웃들에게 열어 놓으면서 그녀의 눈에 이전이라면 무심하게 지나쳤을 그들의 일상적인, 그렇지만 생존에 관련된 문제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제니는 이전까지 당연하게 자신의 편의를 우선시 했던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 또 다시 타인에게 치명적인 불행을 초래할까 두려워 한다. 그래서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필요에 응하기 위해 병원에 상주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아간다.


동시에 제니는 소녀의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다니며 그들에게 그 날 있었던 사건에 대해 아는지, 그 소녀를 본 적이 있는지 묻는다. 하지만 제니가 소녀의 이름을 알기 위해 고군분투 하지만 정작 밝혀지는 것은 마을 사람들의 더러운 비밀들이다. 제니는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소녀를 학대했거나 착취했고, 그 중 아무도 소녀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일을 위한 시간>과 마찬가지로 <언노운 걸>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캐릭터들이 계속 새로 등장하고 그들에 대한 내러티브가 조금씩 밝혀지면서 영화가 전개 된다. 동네 깡패들은 물론이고 평범한 학부모도, 거동도 불편한 노인도, 심지어 소녀의 가족조차도, 변사체로 발견된 소녀가 이름도 없이 쓸쓸하게 묻히는 것보다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 것을 더 두려워 하고 더 신경쓴다.            




결과적으로 제니는 소녀의 신원도 알아내고 인턴의 의대 복귀도 돕게 된다. 하지만 그 두 가지의 죄책감을 덜었다고 해서 그녀가 짊어지게 된 무게가 가벼워 지지는 않는다. 사람들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된 제니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서는 절대 주인공의 감정의 추이를 세세하게 그려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덤덤하게 사건과 대화를 관찰하는 데에만 치중되어 있다.


<언노운 걸>은 한 작은 동네 속에서 신변을 위협 받고, 착취 당하고, 배신 당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렇게 불안정한 매일을 살아가는 여성들은 매춘부, 가정 주부, 의사 등 직업도 다양하고 인종이나 사회 계급에 상관없이 매일 그런 위협을 마주한다. 제니는 프랑스 출신의 백인 의사고 살해 당한 소녀는 가나에서 온 불법 이민자다. 하지만 그녀들은 같은 거리에서 똑같은 남자들에게 위협 당한다. 제니는 그 소녀가 자신의 병원을 찾아오고 살해 당한 날 전까지는 평온한 일상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완전히 둔감했다. 자신이 ‘의사’이자 ‘제니’가 아닌, ‘언노운 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소녀와 인턴에 대한 그녀의 죄책감이 그렇게 크고 중요했던 이유도 아마, 그때까지 자신이 어떤 축에서는 기득권에 속하며 자신의 말 한마디나 행동 한 가지가 누군가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종합 병원의 전문의로 가지 않기로 한 이유도 어쩌면 더 높은 계급으로 이동하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세상을 외면하고 자신을 보호할 수도 있고, 타인을 짓밟으며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르덴 형제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담담하게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결말을 선택한다. 소녀의 장례를 치른 뒤에도 제니는 척박한 환경 속에 있는 이웃들 곁에 남아 있는다. 더 추악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을지도, 또 어처구니 없는 위협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제니가 깨달은 세상의 참모습인 것 같다. 그리고 <자전거를 탄 소년>과 <내일을 위한 시간> 속 주인공들처럼 제니도 그 세상 속에서 살아 남아보기로 결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친애하는 브루투스, 잘못은 저 별에 있는 것이 아니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