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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night and Jun 28. 2020

로맨틱 코메디 공식을 변주하기

나나츠카 칸 <우리 사이 어쩌면>

로맨틱 코미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한다. 영화가 끝에 가서 슬프게 끝난다면 앞에 나왔던 코미디들의 힘이 사라질 테니까. 로맨스가 주제인 이야기에서 가장 일반적 해피엔딩은 두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결말이 아닐까. 그럼 결국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필연적으로 모두 비슷한 내용이어야 하는 걸까?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스트리밍 회사의 제작/배급은 영화 산업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다. 헐리웃 영화들은 이미 보편적 흥행 공식을 벗어나, 이전에 영화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한국계 설정의 여주인공과 ‘야쿠르트’가 나오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가 대표적 주자고, 스트리밍 사이트의 제작/배급은 아니지만 이 시류에 합류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도> 한 예다. 최근 1–2년 새가 아니라도 이미 몇년 전부터 <민디 프로젝트>와 <마스터 오브 제로> 같이, 이런 시나리오와 캐스팅은 꽤 있어 왔다. <민디 프로젝트> 속 민디는 자신이 ‘통통한 인도계 줄리아 로버츠’가 될 거라고 외치며,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과 <유브갓메일>을 보고 자란 밀레니얼 세대의 로맨틱 판타지를 자신의 세상에서 재현한다.            



앨리 웡과 랜달 팍이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우리 사이 어쩌면>은 이렇게 ‘다양성’에 힘을 싣는 로맨틱 코미디의 최근 트렌드 요소를 세세하게, 그러나 좀 더 변주하여 담아낸다. 아시아계 주인공들과 캐스트, 이민자 가족의 문화적 특성처럼 다른 영화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설정들도 있지만 그 외에 시나리오의 전개와 대사들에도 이런 디테일을 반영하고 있다.


일견 <우리 사이 어쩌면>의 시나리오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비슷해 보인다. 우리가 몇 년 전까지 보던 로맨스 영화였다면, 아마 마커스는 구찌 매장에서 1,000달러가 넘는 수트를 샀을 것이고 사샤는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하는 것으로 해피 엔딩이 이뤄졌을 것이다.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아 온 사람들은 아마 사샤가 공항으로 떠나는 길에 해피 엔딩이 이뤄질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예고한다. 사샤의 식당 개업을 앞두고 두 사람이 다투는 씬에서 사샤가 “우리가 서로 반대였다면(if this was the other way around) 네가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함으로서 말이다. 시청자들이 그 동안 어떤 영화를 보아 왔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보아온 식상한 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점을 적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우리 사이 어쩌면>의 결말에서는 두 착에 210달러인 수트를 입은 마커스와 디자이너 드레스를 입은 사샤가 함께 손을 잡고 레드 카펫을 걷는다. 해피 엔딩으로 가는 여정 중 갈등을 겪는 공식은 벗어나지 않지만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두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 각자의 ‘자기 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서로 더 가까워지기 위해 용기를 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흔히 ‘감초 역할’이라 부르는 카메오에 백인 남성인 키아누 리브스 등장시키는, 긍정적 의미로 비틀린 유머 감각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역할의 존재 자체에는 익숙하다. 전통적 헐리웃 코미디에서 웃음 기폭제 역할을 하는, 그러니까 입체적인 필요도 없고 개연성을 부여할 필요도 없는 그저 웃겨주면 되는 단역 말이다. 우리는 그 동안 켄 정, 마거릿 조 같은 배우들이 그런 역할에 최적화 된 배우라고 생각해 왔다. 왜냐면 로맨틱 코미디의 트렌드가 변화하기 전 그런 역할에는 ‘그런 배우들’이 계속 캐스팅 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을 기계적 PC라 비판 하더라도, 어쨌거나 우리는 이제 무의식 중의 갈망까지 인식의 수면 위로 떠 올리기 시작했다.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그렇듯 한 번 인식하기 시작한 문제는 더 이상 없는 척 넘어갈 수 없는 장애물이 된다. 백인 남녀가 만나 “You complete me”로 맺는 해피 엔딩은 이제 예전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리기 힘들 것이다. 이제 세계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다양한 인종과 생김새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로맨스라는 접점의 달콤함을 맛 보는 이야기, 역설적으로 로맨스가 인생의 전부가 아닌 여러가지 선택지의 변주를 보여주는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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