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 night and Jun 29. 2020

여름, 소녀가 자란다

코고나다 <콜럼버스> & 김보라 <벌새>


이번 주말 태풍 링링이 왔다.(이 글의 초안은 2019년 9월에 작성 됐다.) 집 안에 틀어박혀 잠옷도 안 갈아입은 채로 커피를 내리고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연주하는 프로코피예프와 창 밖의 바람 소리를 동시에 들었다. 몇년에 한번 꼴로 유난히 많은 피해를 남기는 이 9월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얼마나 청명하고 맑은 가을 하늘이 되어있을지 상상한다.


가을은 아무리 생각해도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관문 같다. 매년 느끼지만 겨울은 깔끔히 사라지지 않고 3월이고 4월이 될 때까지 차가운 바람으로 길게 꼬리를 드리우며 물러가는데, 여름은 하룻밤을 기점으로 언제 그런 계절이 있었냐는 듯 자취를 감춰 버린다. 그래서 어느 날 현관문을 열었을 때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살갗을 때리면 허망한 기분마저 든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쓰며 한 분기를 살다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야 갑자기 그 계절을 그리워하며, 여름이 어떤 의미였는지 차분히 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계절에 대해 총체적 감각을 버무린 하나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나에게 몇년 전부터 여름은 영화 <콜럼버스> 속 계절이었는데, 오늘은 거기에 <벌새>까지 더해졌다.            



<콜럼버스> 속 케이시는 고향인 콜럼버스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떠나고 싶어한다. 콜럼버스의 모더니즘 건축물들을 사랑하고 아직은 자신이 엄마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도시에서의 삶이 얽매여 있는 것인지 자신이 선택한 것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답답하기도 하고 괜찮기도 한 일상 속에서 그녀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진을 우연히 만나며 새로운 기회를 마주치게 된다. 가족, 현재의 일상, 지나온 삶들과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하는 두 사람은 푸른 잔디밭과 울창하게 잎사귀를 드리운 나무 아래에서 사리넨의 건축물을 바라본다. <콜럼버스>는 두 주인공 케이시와 진이 각각 선택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성장 서사인 동시에, 두 사람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선택을 격려한다는 점에서 버디 무비이기도 하다. 두 동료는 뜨거운 여름의 열기와 쏟아지는 장대비를 머금고 있는 콜럼버스의 녹음 속에서 앞을 향해 나아간다.            



<벌새> 속 중2 은희의 여름은 1994년 대치동이 무대다. 은희는 보편적이고 평범한 소녀다. 미도상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과 언니와 오빠와 대치동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보편적인 은희의 이야기는 가능한한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묘한 향수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나는 은희처럼 흰 반팔 블라우스와 체크 치마로 구성된 여름 교복을 입고, 머리는 학칙에 맞춰 단발로 자르고 발목을 덮는 흰 양말과 장식이 없는 검은 구두를 신고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영화에 나온 진선여중과 대청중을 졸업한 친구들과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고,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에는 미취학 아동이어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동시에 삼풍 백화점과 세월호라는 사회적 비극의 간접 목격자다.


은희의 구체적인 일상은 그래서 비슷한 시대를 지나온 이들의, 그리고 그 나잇대를 지나온 모두의 성장 이야기다. 영화의 끝에서는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고, 춘추복을 입은 여러 소녀들의 얼굴이 비춰진다. 10대 소녀들에게 세상은 어떤 존재일까. 이해할 수 없고, 폭력적이고, 갑갑하지만 때로는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 있고, 즐겁고 행복하고, 그러다 또 갑자기 비극적이기도 한 세상. 비단 10대 소녀들에게만 그런걸까? 대학생인 영지에게도, 아이를 셋 낳은 숙자에게도, 여전히 세상은 그런 곳이다. 살아남은 우리는 그렇게 복잡한 세상을 응시하며 자라간다.


누군가는 여름을 축제의 계절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여름밤의 낭만이나 해변의 불꽃놀이로 기억할지 모른다. 케이시와 은희처럼, 나에게 여름은 도시의 녹음 속에서 차분하게 주시하는 계절이다. 자신을 주시하고 세상을 주시하는. 뜨거운 햇빛과 숨막히는 수분을 양분삼아 소녀들은 나무처럼 가만히 자라난다. 계절이 바뀌면서 햇빛은 한층 기울고 습도는 사라진다. 갑작스러운 찬바람에 당혹스럽고 허전한 기분이 들면 그제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여름 사이 우리의 키가 한뼘 자라있음을.

매거진의 이전글 홈 스윗 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