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 night and Jun 29. 2020

홈 스윗 홈

전고운 <소공녀>

‘집’이란 단어는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심상을 떠오르게 한다. 누군가는 고된 하루의 끝에 돌아가 몸을 뉘일 곳을, 누군가는 빽빽한 아파트 숲 속 재산 가치를 대변해 줄 몇 개의 부동산을, 누군가는 가족을 떠올릴 것이다.

영화 <소공녀> 속에서는 다양한 집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세대 주택, 단독 주택, 아파트 등등. 그 속에 사는 주인공 미소의 친구들의 삶의 모습도 다양하다. 부자인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지만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닌 그 부를 지키느라 히스테릭하게 변한 친구, 무리하게 빚을 내어 아파트를 마련했지만 거기서 함께 살고자 했던 사람은 떠나고 빚과 집만 남은 친구 등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이런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며 묻는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집은 어디인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이 영화를 보면 한줄평 페이지에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 미소가 정해진 거처가 없어 불행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집(home)이 있어 행복한지에 대해 각자 계속 정의를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글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사실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미소 같은 방식의 삶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아닌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논픽션이고, 좀 더 현실적 모습들을 보여준다. 어떻게 집을 찾고 구입했고 어떻게 꾸미고 유지하며 살아 가는지. 작가들은 스스로를 ‘조립식 가족’이라 부른다. 실용과 목적성에 따라 모인 가족이고 유닛으로 자유롭게 해체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들은 결혼이나 혈연 관계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다른 가족들이 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로 집을 만들어 가고 있다. 아주 특별하기도, 아주 평범하기도 한 집을 만들어가는 경험이다.


가족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혈육 관계로 맺어진 핵가족이라는 좁은 의미에서 벗어나 경제 생활을 함께하고 가사 노동을 분담하는 물리적/경제적 공동체를 일컫는 넓은 의미로 확장한다면, 세상의 모든 집은 장소(house)와 그 속에 존재하는 가족(home)으로 이뤄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소공녀>와 에세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상이하게 다른 모양의 집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나는 이 둘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본다. 부동산이 없는 미소나 부동산이 있는 책 속 두 작가들에게도 이미 집은 심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술이든, 고양이들과 따듯하게 잠들 수 있는 널찍한 아파트이든, 그들에게 집이란 존재는 물리적으로든 심적으로든 쉼터이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다.




집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쉽게 집이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집을 마련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 무의식 중에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 중에, 좋은 질의 제품으로 충족하기 가장 어려운 항목이라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집’의 정의를 물리적 거처라고 할 때, 몸의 건강이나 물리적 환경에 쉽게 좌우되는 사람의 감정은 해가 진 후 깨끗하고 쾌적한 곳에서 쉴 수 없을 때 쉽게 불행함을 느낄 것이다. 쾌적할 수 있는 집 안의 요소는 적당한 넓이, 적당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가구들, 허기와 심심한 입을 달래줄 식량과 음료, 즐겁게 어울릴 수 있거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사람의 존재 혹은 때에 따라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 등 여러가지다. 대도시의 부동산들은 모두 너무 비싸서, 사실은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혹은 집이란 어떤 존재인지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지 생각도 해보기 전에, 어떤 장소에 집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계급이고 부의 상징이기 때문에 집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든 부동산이든, 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좋은 집이 있다면 불행하진 않겠지만 불행하지 않은 것이 행복함은 아니니까 말이다. 어쩌면 집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인 것 같다.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 너무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 집을 구하고 꾸미고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들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여름밤의 이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