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012년 겨울 뉴욕에 간 적이 있다. 당시 대학 졸업을 앞둔 ‘취업준비생’이었던 나는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회사들에 이력서를 들이 밀고 면접을 보러다니다가 모두 탈락한 뒤 ‘뭐 해서 먹고 살지'라는 고민으로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론 이렇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사는 것도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어, 때마침 친구 한 명이 조카를 보러 미국에 있는 오빠를 방문한다길래 염치 불구하고 친구네 집에 얹혀 8일을 보내기로 하고 엉겁결에 뉴욕이라는 대도시를 구경하게 되었다.가는 길에는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 시리즈를 읽었고 맨해튼에 도착해서는 메트로폴리탄과 MOMA에 갔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원본의 그림이 지닌 가치를 이해하게 되었다. 책 속에 실린 자그마한 사진으로 그림을 보는 것과 화가가 원래 그린 크기 그대로 액자에 넣어져 하얀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그 그림의 사진’과 ‘그 그림’을 보는 것은 정말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마치 평소에 흠모하던 연예인의 실물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프란시스 베이컨, 앙리 루소, 에드워드 호퍼 같은 사람들이 캔버스 위에 직접 남긴 손의 흔적을 내가 바로 그 앞에서 보고 있다니.
분절되고 찢겨진 육체를 담고 있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커다란 트립틱(triptych) 앞에서나는 ‘도대체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는걸까’ 같은 고민들을 모두 잊어버렸다. 인간의 감각을 시험하고 육체와 정신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 앞에서 나는 먹고 사는 것 외에도, 아니, 어쩌면 보다 더 깊은 곳에 위치한 삶의 심층에서 우러나는 문제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위대한 그림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의 그 표면적인 모든 삶의 문제가 사실은 어디서 온 것인지 알고 있어? 우리는 이미 한 번씩 그 곳에 다녀왔지.”
대중들은 흔히 예술(fine art)이란 ‘등 따시고 배부른 인간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한다. 예술의 주된 소비자 층에 관해서는 분명히 맞는 말이다. 만원이 있으면 밥을 먹을지 미술관을 갈 지 둘 중에 한가지를 선택해야하지만 이만원이 있으면 밥도 먹고 미술관도 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순수 예술들은 직관적이나 말초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그에 관련된 자료(텍스트, 이미지, 비평, 무엇이든)를 더 찾아보고 그것을 소화하기 위해 사색하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물리적 시간이 충분한 자들은 대부분 부자들이다.
하지만 예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한 장의 그림으로 모두를 감동시키고 그 그림을 통해 ‘이것이 바로 삶의 문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술은 향유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해야만 한다는 생존의 문제일 것이다. 말해야만 하는 것, 그려야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을 기어코 세상에 토해내고 마는 사람들을 나는 ‘예술가’라고 부른다.
대학생 때 평일 낮에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열리는 고흐 특별전에 간 적이 있었다. 전시된 그림들 중 게를 그린 정물화를 보고 있었는데 좋은 옷을 차려입고 무리지어 나들이를 온 아주머니들이 내 앞에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하도 시끄럽게 떠들길래 무슨 이야기를 하나 가까이서 들어 보니, 게 정물화를 보며 간장게장 담그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크 로스코 같이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전시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검색 포털에 그 전시회의 이름을 치면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을 복사해서 붙여넣은 짤막한 설명과 함께 전시회 포스터를 배경으로 찍은 사람들의 셀카만 수두룩하게 나온다. 고흐나 마크 로스코처럼 삶의 늪에서 처절하게 헤엄쳐야만 했던 화가들의 그림을 두고 간장게장 이야기를 한다든지 ‘스티브 잡스가 좋아한’ 등의 수식어를 붙여 전시회 표를 팔고 대중들의 셀카 배경이 되도록 하는 그 아이러니가 바로 예술의 창작자와 소비자의 관계다.
하지만 여전히, 그리고 분명히, 아름다운 그림에는 힘이 있다. 비단 그림 뿐만은 아니다. 위대한 창작물들은 글이든, 음악이든, 영상이든, 모두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미술관을 찾는 대중들 중 많은 사람들도 이런 감동을 느낄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은 세상을 보는 관점을 일깨워주고 때로는 바꿔주기도 하며, 자기 자신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우리는 천재들이 토해놓은 궤적들을 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관계와 외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미술관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