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 night and Jun 29. 2020

Shade of Summer

2016년 3월 방콕

살에 에는 듯한 추위로 고생해야 하는 혹독한 겨울의 세 달 다음으로 내가 싫어하는 달은 3월이다. 추위의 정도로 따지면 11월과 비슷할지 모르지만, 11월은 추위가 시작되는 달이라 ‘어차피 피할 수 없다’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3월의 추위는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라는 지긋지긋함에 넌더리가 나게 만든다. 올 3월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상하게 더위는 꼬리가 아주 깨끗하게 잘려나가 가을이 되고 곧 추위가 올 것이라고 예고하는 몇 개의 절기가 지나면 다시 여름이 되돌아올 때까지는 절대 그 흔적을 남기는 법이 없는데, 추위는 정반대로 경칩이니 입춘이니 하는 절기들이 몇 개나 지나고 꽃까지 피어도 꼬리를 길게 드리우고 계속 질질 끌며 흔적을 남긴다.


항상 고민해야 하는 일상적인 문제들도 추위와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다. 나이를 아주 많이 먹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져 온 고민들은 몇 년을 주기로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하나씩 따로 떼어놓고 보았을 때는 사소하고 평범한 문제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지 않고 질질 끌리면서 하나씩 하나씩 내 눈앞에 겹쳐 보여지며 마치 내 삶이 풀기 어려운 문제들로만 가득찬 거대한 시험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3월을 지나며 나는 인생이 영원히 수능날이 다가오지 않는, 모의고사의 무간지옥 같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며칠 간의 여유가 주어지자마자 잠시나마 익숙한 지겨움을 불식시켜 볼 요량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할까.





며칠을 있어도 심심하거나 지겹지 않기에는 뉴욕처럼 크고, 사람들이 많고, 모두가 아주 바쁘게 사는 오래된 도시들이 제격이긴 했다. 모두가 바쁜 도시는 대개 그들이 만들어낸 무언가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대부분 북반구의 대도시들은 아직도 겨울이었다. 이 시기에 추위에서 벗어나려면 적도에 가까이 가는 수밖에.


주변에는 동남아시아 중에선 방콕만 다녀와 본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나는 방콕만 빼고 다른 도시를 거의 가봐서 이번엔 방콕에 가기로 했다. 태국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자기네 언어가 있고, <왕과 나>에 나온 시암 왕국의 후손들이 사는 나라이며 방콕에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좋았다'고 말한다는 것 정도가 내가 가진 정보의 전부였다. 일주일의 시간이 있으니 가는 김에 치앙마이와 방콕 두 군데를 가볼까 했는데 목적지를 정하고 떠나기까지 딱 사흘밖에 여유가 없어 부랴부랴 뭔가 준비하기 귀찮아 그만두었다. 이번 여행에는 딱히 목적이랄 것도 없고 그냥 추위만 피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다녀온 사람들에게 두 세 군데씩 가 볼만한 스팟을 추천 받았다. 한 친구는 내가 멋모르고 예약한 호텔의 위치를 보더니 ‘far from everything’이라며 고개를 젓고는 어느 동네에 무엇이 있는지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고 한 친구는 가이드북 한권을 거의 통째로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었다.






수완나폼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갔다. 택시 기사는 서울도 차가 많이 막히냐, 방콕은 24시간 차가 이렇게 막힌다, 라는 말을 세 번 정도 되풀이했다. 나는 오는 길에 읽었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구절들을 떠올리는 동시에 삽시간에 땀이 나는 더위와 매캐한 공기로 차가운 맥주 생각이 간절해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티타는 아예 부엌으로 옮겨 와, 아톨레와 차를 마시며 아주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랐다. 그러니 티타가 음식에 특별히 뛰어난 감각을 지니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 티타가 밥 먹는 시간은 부엌의 일상에 따라 움직였다. 아침나절에 콩 삶는 냄새가 나거나, 정오에 닭 잡을 물이 준비되었거나, 오후에 저녁 식사를 위한 빵이 오븐에서 구워질 때면 티타는 이제 슬슬 자기가 밥 먹을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티타는 나차가 양파를 다질 때 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울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 눈물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둘이 함께 울면서 재미있어하기까지 했다. 티타는 어렸을 때 기뻐서 흘리는 눈물과 슬퍼서 흘리는 눈물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티타에게는 웃음도 울음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티타는 삶의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을 혼동했다. 부엌을 통해 삶을 알게 된 사람에게 바깥세상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민음사















혼자서 몇 번의 여행을 해 보았지만 한 번도 ‘왜 여행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동안은 항상 가고 싶은 행선지가 있었고 그 곳에 가고 싶은 이유, 그러니까 그 곳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던 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었기에 이 여름의 도시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왜 떠나왔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가도로를 빼면 언덕조차 구경하기 힘들 정도로 평편한 도시의 바닥, 불타는 태양 아래 반짝이는 황금의 궁전과 사원들, 더위와 매연을 피하기 위한 필사의 조치인 것처럼 낮은 건물들을 감싸 안고 있는 수목들, 툭툭과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노점상 앞에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는 남자들을 보며 나는 일주일 간 낯섬을 겪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택제천고속도로의 노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