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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night and Apr 11. 2021

잃어버린 노스탤지어를 찾아서

넷플릭스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시간은 어김없이 지나가고, 시간이 더 멀리멀리 갈수록 그 시간에 묶여 있는 기억들 점점 희미해진다. 그래서 인간은 기록을 한다. 무언가를 만들고 기록하고 남기는 일은 이 세상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려는 시도가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잊지 않으려는 노력에 가깝다. 시간대의 공존에 대한 이론적 가설이야 무궁무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자아는 한 개의 선형적 시간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지나간 시간 속의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게 돼 버리니까, 지나갈 시간에 대해 언어나 이미지나 소리 같이 미래의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기호로 기록해 두지 않는다면, 그 시간대의 내가 누구였는지 쉽게 잊게 된다. 결국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유리돼 버릴 수도 있는데 그렇게 내가 살아낸 시간의 숫자가 점점 늘어 갈수록 각각의 시간 속 나는 점점 더 작은 조각들로 파편화되고, 지금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과거에서 온 기호들이 없다면 그 작은 파편들을 모아 '나'라는 사람으로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스탤지어는 과거의 나 자신에게 가지는 그리움보다 과거의 산물들을 통해 스스로를 이해하고 싶은 열망이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한 자신의 기록들이 타인과의 연결 또한 형성한다는 건 정말 많은 의미를 가지는 일이다. <셔커스>를 통해 샌디와 재스민과 소피는 친구가 되었고 그들은 여전히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로 남아 있다. 샌디와 친구들 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다른 시간대에 있는 나도, <셔커스> 같은 영상이 없다면 어떻게 80년대 싱가포르의 소녀와 소년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을 형성해 가는 것은 타인과의 연결로도 이어진다.



<셔커스>의 시간은 소녀들은 1980년대 경직된 싱가포르 사회 속에서 특이한 영화와 음악을 발견해 나가고 있었다. 안정된 경제 상황을 발판 삼아 독재가 더욱 공고해지는 싱가포르에서 샌디와 재스민은 온갖 이상하고 난해한 것들에 집착했다. <블루 벨벳>에서 영화의 미감을 배우고, 방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신당을 차려놓고 걸작을 만들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며 60년대 미국 펑크록을 숭상하는 로큰롤 잡지에 글을 쓰던 10대 후반 여자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20대 초반에 만든 <셔커스>는 그런 당시의 싱가포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상함의 총체적 기록이다.


조지 카도나가 <셔커스>를 훔쳐 갔을 때 그는 단순히 어린아이들을 속이고 그들의 업적을 가로채려 했던 나쁜 어른인 것뿐만 아니라 그 필름을 훔쳐가 돌려주지 않음으로써 <셔커스> 멤버들의 정체성을 송두리 째 빼앗아 갔던 것이었다. 

"우린 더 이상 영화를 만든 멋진 애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냥 애들이었다."

서구권의 문화 예술 산물들을 샅샅이 훑고 경배하는 소녀들의 영화에 대한 감각과 열의를 보았을 때 이 백인 남자는, 자신이 단순히 나이가 더 훨씬 많은 미국인이란 이유로 그들의 감각과 열의를 온전히 착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는 항상 돈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자의식ego를 위해서 아무렇게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셔커스>를 만들며 세 소녀를 부하직원처럼 부리고, 그들의 아이디어와 미학적 감각과 개인 자금까지 아무런 보상 없이 마음껏 받아 쓰며, "자기의 영화"를 만들고 필름까지 훔치며 자신이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는 환상을 그렸던 것 같다. 영화를 만들어 갈수록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고 느꼈던 소녀들은 그때까지도 본격적으로 조지를 의심하기엔 그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전해 받았고 영화의 많은 부분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셔커스>는 점점 더 그들의 손에서 멀어져 갔다.


<셔커스>를 되찾았을 때 샌디는 영화 속에 담긴 그 시절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반항적이고 거침없었는지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샌디는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 나아가는 과정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뒤로 가야 했다'라고 묘사한다. 인생에서 어떤 시간이 통째로 사라졌던 <셔커스>의 제작자들은 다시 그 시절 자신들을 되찾아 간다. 사회 운동가가 된 재스민은 그때에도 법으로 금지된 껌을 반항적으로 씹어댔었고, 늘 신중하고 꼼꼼하게 모든 일처리를 도맡아 하던 소피는 영화과 교수가 되었다. 그들은 신기하리만치 변하지 않았었지만 잃어버렸던 필름의 발자취를 되짚어가는 과정에서 계속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밝혀진다. 결국 그들은 되찾은 필름 앞에 서서 이렇게 자문한다. '그때 그건 전부 뭐였을까?'


이 혼란스러움 앞에서 소피는 '상실된 과거의 <셔커스>를 찾으려 하지 말고 그 영화에게 내세afterlife를 주고 그 생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게 하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샌디는 그 말에 따라 <셔커스: 잃어버린 필름을 찾아서>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내세에서 자신이지만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돌아온 <셔커스>는 이제야 완전해졌다. 


자신의 모습을 찾아 나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과거의 시간 속으로 돌아가 내가 잊었거나 빼앗긴 무언가를 다시 발굴해 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을 조우하기 위해 두 팔을 벌려 기다려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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