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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night and Feb 06. 2021

결국 환상일 수밖에 없다는 건 알지만-1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나는 미술관을 사랑한다. 사랑의 이유는 천천히 설명하기로 하고, 캐롤 던컨의 <미술관이라는 환상>을 읽으며 느낀 감정은  '산타 할아버지는 사실 부모님이었다'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된 어린이의 슬픔 같은 것이었다. 정확히는 깨달았다기보다 확인 사살에 가깝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아름다운 페이소스라 생각했던 경험이 결국은 1세계들의 이데올로기의 실현이었다는 점을 책을 읽으며 재차 확인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한 자리에서 배울 수 있는 현대인은 이젠 결국 어디서도 완벽하게 '순수한' 경험을 할 수 없는 것인가! 같은 통탄도 함께 느낀다. 그래도 어쨌든, 미숙하고 순진한 눈으로 봤기 때문에 가능한 체험이었다 하더라도, 그 긍정적 감정은 아직도 나에게 좋은 추억인 동시에 거창하게는 이전까지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해 준 전환점이었다. 트레바리의 미술 클럽에서 미술관에 대한 주제를 전달받고 <미술관이라는 환상>을 읽으며 내가 몇 년 전 미술 감상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간단하게 써본 적은 있지만 내가 방문한 미술관들에 대해 글로 정리해 둔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억이 더 많이 휘발되기 전에 빨리 써두어야 한다. 그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다.


*보통 미술관, 갤러리, 박물관은 취급하는 작품과 운영 방식에 따라 다르게 분류되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미술관이라는 환상>에서 사용하는 미술관&박물관 워딩에 더해, 갤러리도 같은 체험의 공간으로 묶어서 묘사할 예정이다.



결국 환상일 수밖에 없다는 건 알지만 - 1.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가장 많이 후회했던 건, 돈을 좀 더 모으면 가야지 하고 계획했던 나의 '세계 미술관 여행' 계획을 더 일찍 실천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미술 작품을 보는 것도 좋지만 어디든 미술관, 갤러리라는 공간 속에 들어갈 때 느끼는 그 감각이 너무나 좋았다. 여행지에 가면 꼭 미술관을 가야겠다고 처음 결심한 것은 20대 중반 즈음이었는데,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MoMA, 구겐하임을 순서대로 방문했었다. 셋 다 서로 너무나 인상적인 개성의 공간들이었고 크기와 건물 외관, 인테리어, 전시하는 작품들 모두 각각 다른 강렬한 인상들을 나에게 남겼다.


<미술관이라는 환상>에도 메트로폴리탄, 모마의 건립 배경과 큐레이팅의 특징에 대해 기술돼 있어서 방문했을 때의 특징들을 떠올리며 읽게 되었다. 특히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내가 '메트로폴리탄'이라 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도시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가장 거대한 전시장이었기 때문에 1장의 '의례로서의 공간'이라는 묘사에 부합하는 경험을 했었다. 동시에 6시간을 꽉 채워서 돌아다녀도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컬렉션의 양과, 대영박물관도 루브르도 아닌 미국에서 왜 굳이 이런 인류학적 컬렉션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며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일종의 해답을 얻었다. 유럽에서 넘어온 앵글로색슨들이 200년 전에 만든 나라에 고대 문명의 유물들이 전시해 둔 것을 보는 경험에는, 당시엔 어렴풋이 직관으로 느꼈을 뿐이지만 '공공의 지식, 문화 함양을 위해' 위한 위정자들의 인위적 솔루션으로 만들어진 스케일에서 오는 위화감이 있었다. 방대한 전시관을 가득 채운, 자신들의 것이 아니지만 자신들이 익숙한 문화권의 유물들을 보며 프렌치 다이너 공간에서 김치찌개를 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위화감은 박물관의 압도적인 스케일 앞에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가장 좋아하는 씬이기도 하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도착해 입장했던 순간부터 차례대로 떠올려 보자면, 가장 먼저 자율적 기부로 금액을 내고 입장하는 시스템이 놀라웠다. 한국에도 '공공'을 위한 전시 공간은 많지만 공공기관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원하는 만큼 돈을 내라는 기부 시스템은 정착돼 있지 않기 때문에 문화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들이나 다른 전시품들보다 나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정문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입구와 1층에 있는 이집트관, 그리스관 그리고 그리스관에서 이어지는 아메리칸 윙American Wing 카페였다. 파랗게 맑은 하늘의 채광이 그대로 쏟아져 들어오는 탁 트인 창 아래 놓인 고대 이집트 건축 모형들과 뽀얗게 빛을 반사하는 헬레니즘 시대의 대리석 조각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관람한 후 이어져 있는 현대식의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실 수 있는 경험은 인류 역사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편집해 모아놓을 권리를 쟁취한(?) 현대인을 자축하는 긴 의례 같았다. 아메리칸 윙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먹으며 나는 생각했다.


'아아 나는 문명인이자 현대인이구나, 너무 자랑스럽다! 몇천 년 간의 문화사에 걸쳐 편집된 아름다움을 취할 수 있는 현대 문명이야 말로 인류의 승리다!'


(...) 그 작품들이 우리에게 일종의 숭고한 행복감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거기서 우리는 고양된 삶의 능력과 천상에 대한 기억을 갖고 상쾌한 기분으로 지나가게 된다. -p42, <미술관이라는 환상>


내가 느낀 카타르시스는 이 종교적 의례에 걸맞은 세례를 받은 자의 감탄이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라는 무대 위에서 약간의 제국주의(그들의 뿌리에 의해)와 팍스 아메리카나의 성령이 주최하는 세례식의 참여자이자 연기자로서, 물에 머리를 담갔다 빼며 문명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난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집트가 어느 대륙에 존재하는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생긴 신전과 이렇게 생긴 동상이 있는 곳이잖아? 난 이집트에 대해 알아'라고 말할 수 있는 미국인의 무지적ignorant 당당함의 한 조각을 내 것으로 얻게 된 느낌이었다.


문화인류학의 결산과도 같은 방들을 지나 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들이 이어지는 방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로 '시간과 정신의 방'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방과 방들이 계속 맞닿아 있는 형식의 전시장도 이때 난생처음 가보았다. 박물관 안에 들어온 지 6시간이 가까이 돼 가는데도 아직 전시관을 다 못 돌아다녔고, 발바닥이 터질 것 같고, 아무리 박물관 안의 매점을 들락거려도 허기와 갈증을 채우기는 힘들었다. 회화 전시실에는 이젤을 세워놓고 수채화나 유화를 그리는 사람들과 바닥에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벤치가 보일 때마다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뉴욕 시민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것이 선진국의 예술 교육인가? 예술이고 뭐고 너무 힘들었다. 나보다 체력이 약했던 동행인 친구는 벤치에서 거의 자고 있었다.


그때서야 불현듯 깨달았다. 여기는 하루에 다 보는 박물관이 아니구나. 왜 입장료가 기본이 무료고 마음대로 돈을 내는 시스템인지 알겠다. 하루에 3달러 정도씩 내고 일주일간 나눠서 오든지, 아니면 오늘 20달러 내고 향후 대여섯 번에 걸쳐 오면서 공짜로 들어오든지 하는 거구나(당연히 진짜 이유는 아니다). 어쨌든 지금까지 내가 익숙해 왔던 '도시'의 스케일이 아니란 것이 뼈에 사무치게 체감됐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외에도 가야 할 동선이 산더미였고 일주일 안에 그 동선을 모두 돌파해야 하는 관광객이었기 때문에 다음날이나 다른 날에 다시 올 수는 없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때쯤 박물관을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가며 한반도에서 온 관광객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방대한 전시 컬렉션에 대한 동경과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다음 날의 행선지는 현대미술관(MoM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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