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기온이 15도였다가 28도까지 오르는 날씨들이 번갈아 찾아오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또 아열대 기후 같은 습도의 장마철 같은 날씨고 햇빛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 작년 여름의 악몽(?)이 떠오르고 있다. 40일 정도 연속해서 비가 왔던 것 같은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름이 지긋지긋하게 싫다고 느꼈던 해였다. 하지만 날씨에 대한 감상은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로 일상에 치이는 하루하루의 연속인데, 코로나 이후 '할 수 있을 때 바로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서 모든 것을 무리하게 소화하려는 내 의지 때문이기도 하다. 그치만 무리인가? 싶어도, 막상 해 보면 할 수 있고 꽤나 잘 해내고 있어서 역시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15%정도 강하다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다.
5월 첫째 주에는 광주 비엔날레를 다녀왔다. 광주에 간 것도 처음이고 비엔날레에 직접 가본 것도 처음이었는데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한국 사회는 항상 비극의 후처리에 대한 골든타임을 놓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수준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 진상 규명이든, 추모가 됐든, 모든 것을 그냥 새까맣게 잊어버린 채 잘도 몇 십년씩 시간을 흘려보내 버려서 현대(contemporary)에 와서는 그 문제를 더 이상 어떻게 핸들링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지경이 돼버리는 것 같다. 4.3도 그랬고, 5.18도 그랬고, 삼풍백화점도 그랬고 세월호도 지금 그러고 있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외국 작가들이 광주와 제주에 머물며 유가족, 생존자들을 인터뷰 하고 그에 대한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이 비극의 진상들에 이견(씩이나 된다고 보기도 어려운 그냥 빨갱이 타령 개소리지만)이 있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 기억하겠다는 말 앞에 해쉬태그만 붙이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승화된다고 믿는 사람들 등을 보며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이 들지만 분명한 건 아직도 우리는 해야할 일 중 많은 걸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비극에 대한 의견과는 별개로 비엔날레에는 좋은 작품들이 많았고 부산 국제영화제나 광주 비엔날레 같은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 문화 축제가 얼마나 즐거운지-거기 갈 것 같은 사람들은 다 거기 가 있고, 어디 한 군데서 만나서 밥을 먹거나 수다를 떨고, 그리고 또 작품들 구경하러 가는 그런 여가가 얼마나 재미난지 오랜만에 상기할 수 있었다. 빨리 전부 다 백신 맞고 마음껏 놀러 다녔으면 좋겠다.
새 회사에 입사했다. 외국계 대기업에 대해 대충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한꺼번에 새로운 정보가 너무 많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잠시 압도당한 기분에 패닉 상태가 됐었다. 다들 굉장히 젠틀하게 필요한 것이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고 해주었지만 뭘 물어봐야 맞는지도 모르겠는 상태라서 그냥 어리둥절하게 다니고 있다고 했더니 자기들도 그렇다며 9개월쯤 되면 자기가 뭘 모르는지는 알게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란다. 그렇군. 일단 크리넥스 휴지를 어디서 받는지(그냥 돌아다니면서 한장씩 훔쳐 쓰라고 한다)나 프린터 연결을 어떻게 하는지 갗은 것들부터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 두 달 안에 마무리 해야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본 지식 같은 것들이 아직 매우 요원해 보인다. 2주 정도는 공부를 하긴 해야 한다는데 시험비는 무지하게 비싸고 거기다 통과 못한 시험 비용은 회사에서 처리를 안해준다네. 운전 면허 시험도 기능을 두 번이나 떨어져본 나로써는 정말 치가 떨리고 살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의 모든 것을 해보면 알겠지, 란 생각 하나로 그냥 어찌저찌 헤쳐나가는 것 같다. 안 되면 그냥 그 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 그것 말고는 딱히 방법도 없다.
미루고 미루던 <이불-시작> 전시를 봤다. 4월에 오픈했을 때부터 봐야지, 봐야지, 했는데 미루고 미루다 결국 전시 마지막 주에야 가서 봤다. 이불은 워낙 유명한 작가고 그녀의 작업들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딱히 충격적이거나 새로 감명깊게 느꼈던 부분은 없었는데 이불이 누군지도 모르고 같이 갔던 친구는 첫 영상 작품 <갈망>(1988년 작)을 보자마자 뒤돌아 나가서 작가 소개을 다시 읽고 들어왔다. 그런 모습을 보며 문득 백남준 같은 사람에 비해 이불은 한국에 너무 안 알려져있단 생각이 들었다. 파격성이나 국제적 명성으로는 뒤지지 않을텐데 여성이고 페미니즘적 파격을 추구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89-90년대 그녀의 소프트 조각, 행위 예술 혹은 공연 등을 녹화한 영상들과 그 작품들을 위한 초기 드로잉들을 보며 아카이빙의 중요성도 다시 실감했다. 그런 기록들을 접하지 못했다면 나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전위적 작업을 하는 현대미술 작가 중 한 명으로 생각하고 넘어갈 뻔 했다. 예전에 NDC에서 들었던 '할머니가 들려주는 마비노기 개발 전설' 세션도 그랬고 어떤 작업이나 작품들은 아카이브가 있을 때 좀 더 깊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작업의 정교함이나 비주얼의 정제된 상태, 기능 혹은 기술적 파격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고 내가 직접 목도하지 못한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배우는 것은 제대로 된 이해에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앤 디디온의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를 원서로 읽고 있다. 딱히 그녀의 글이 뭔가 풍부한 서정을 담고 있을 거라 기대한 적도 없었는데도 생각보다 문체가 너무 건조해서 조금 의외였다. 그녀가 에세이스트로서 너무 유명해서 뭔가 좀 더 감정적이랄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는 K-베스트셀러 같은 글을 썼을거라 나도 모르게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히 아닌데, 의외라고 느끼는 내 자신이 좀 웃겼다. 좋은 글이라 무엇일까? 딱히 인세를 받는 작가도 아닌 내가 그런 것을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을 더 잘 이해하길 바라는 것이 글 쓰는 사람들의 가장 근본적 소망일텐데. 어느 시점부터는,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것이 글 자체의 가독성이나 문장력의 문제가 아니란 생각도 든다.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처럼 세태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서술하고,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적어나간 문장이 새로이 유명해 지는 시대는 한 2018년쯤을 기점으로 더 이상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