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 night and Sep 13. 2021

양조위, 홍콩의 페르소나

이때다싶어 쓰는 덕질의 기록

2021년에 양조위가, 그것도 마블 스튜디오의 액션 히어로 영화에서 빌런 역할로 다시 인기를 얻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2013년 처음으로 홍콩에 혼자 갔던 이유는 양조위, 정확히는 왕가위 때문이었다. 20대 중후반의 나는 왕가위 트릴로지 시리즈에 푹 빠져 있었고 거의 정신을 지배 당하고 있던 수준이었다. 이미 재개발의 재개발을 거듭한 홍콩 시내에서 음습한 청킹맨션이나 낭만적인 란콰이퐁의 밤거리를 지키고 있는 야식 가게, 어스름한 푸른 빛이 드리우는 캐슬로드의 전화 박스 같은 영화 속 자취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동시대 홍콩의 풍경과 문화는 여전히 이질적이고 매력적이었다. 왕가위 영화의 에스테틱에서 시작된 흥미였지만 도시 자체에 매료된 나는 판데믹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 후로도 셀 수 없이 많이 그 곳에 '그냥' 놀러갔다. 나에게 홍콩은 양조위, 왕비, 장만옥, 금성무의 젊은 영혼들이 깃들어 있는 영험한 땅 같은 곳이었다. 그들보다 한참 뒤에 태어났는데도 나에게 도시의 청춘이란 건 흐릿한 해상도 속 그들의 모습 뿐이었다.


양조위는 원래 홍콩 브라운관의 청춘 스타였다. <의천도룡기>의 장무기 역할을 비롯해 여러 무협 드라마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고, 양조위와 같이 활동했던 매염방, 장국영, 유덕화 같은 배우들도 지금 아이돌들처럼 가수와 드라마, 영화 출연 등을 병행하며 청춘 스타로 아시아 전역에 이름을 알렸다. 지금의 20-30대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왕가위 영화나 <무간도> 같은 영화에 양조위가 출연한 것은 좀 더 뒤의 일이다.  양조위의 홍콩 내 커리어처럼 무협 장르-20세기 말 홍콩 영화 전성기로 이어지는 환경에 대해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주변의 486(이제 586이라고 해야할지도)세대 어르신(?)들의 증언만으로도 충분하고, 유튜브나 각종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관련된 드라마와 영화들을 아직 많이 찾아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xuIQmmjl6Y

https://www.netflix.com/title/80188823


굳이 양조위가 과거에 어땠는지 풀어 이야기 해 보는 이유는, 2021년에 마블 프랜차이즈 영화로 만나는 양조위와 양자경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홍콩 영화에서 시작한 나의 흥미는 공항 문턱이 닳도록 그곳을 드나들며 점점 시사적, 사회적인 방향으로 옮겨갔다. 왕가위 트릴로지 영화 다음으로 나는 구룡성채의 내러티브가 궁금해서 구룡성채 공원에 가러 또 홍콩에 갔다가, 허물어지기 전 구룡성채의 건물들 위로 낮게 난 비행기가 카이탁 공항에 착륙하는 영상 자료를 보며 중국에 반환되면서 홍콩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영국령이었을 때의 중국인(광둥어를 쓰는)들의 삶은 어땠는지 같은 좀 더 시사적인 모습들을 영웅본색, 열혈남아 같은 영화와 찬호께의 소설 속에서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홍콩은 중국인 동시에 중국이 아니다. 중국-중화권의 근현대사는 모두가 잘 알듯 복잡하다. 홍콩인도 대만인들도, 북미에 이주한 그들은 자신들을 차이니즈라고 소개해야만 한다. 북경어와 광둥어는 모두 중국어로 묶인다. 정작 왜 중국 본토인들보다 60-70년대 대만과 홍콩에서 온 이민자들이 북미에 거주하는 중국계 이민자의 압도적 대표성을 가지는지는, 북미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말이다. 지금 양조위 때문에 한창 거론되는 영화 중 하나인 <화양연화> 영화 말미에, 영화의 배경인 60년대 홍콩에서 왜 예전 집주인이 허둥지둥 가구도 다 처분 못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려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그닥 없다. 그렇게 홍콩을 떠난 사람들의 자식들이 지금 <샹치> 속 샹치와 케이티 세대라는 사실에도 말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홍콩이 지금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단언하기는 힘들다. 한창 여러가지를 겪어내고 있는 단계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계보로만 이야기 하자면, 20세기 말의 홍콩은 사라졌다. 왕가위의 미장센으로 대표되던 예술 영화도, 무협이나 느와르 같이 사람들에게 홍콩 고유의 장르로 각인된 영화들도 대가 끊겼다. 이제 그것들은 <샹치>의 초반 숲 속 무협 씬이나 샌프란시스코 시내 버스 액션 씬 같은 컨템포러리 컨텐츠들의 오마주 속에만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양조위와 양자경은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해 살아남은 종족이다. 유명인들의 상징성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콰피나도 언젠가 말했듯 소수자의 숙명은 죽을 때까지 타의적으로라도 무언가를 대표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2000년대에 나온 <와호장룡>과 <화양연화>가 중화권 영화가 글로벌 예술 영화계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해준 어떤 마지막 명맥같은 것이었는데(이 문장은 또 왠지 <일대종사>를 떠올리게 한다), 양조위와 양자경은 그렇게 그 시대를 끝으로 용 같은 어떤 전설 속의 아름다운 생명체로 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이든 어디서든, 스타트렉이든 마블이든, 자신들이 배우로서 일을 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을 찾아 어떻게든 다시 발을 디디고 섰다. 그들은 전설 속의 용이 아닌 현존하는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샹치>의 버스 액션 신에서는 모두가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향기를 진하게 느꼈을텐데, 정작 성룡 본인은 중국 정부의 나팔수가 되었고 우산 시위, 미얀마 시위등 세계 곳곳의 민주적 운동(주로 현 중국 정부에 대항하는)을 지지하는 두 중화권 배우가 마주보는 장면이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에 나온다. 이 단 한 장면만으로도 <샹치>는 동아시아인들의 '블랙팬서'가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못하고 다수지만 소수다. 하지만 온갖 모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아시아인들은 그래서 결국 세계를 생각할 때 홍콩을 생각해야만 한다.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홍콩이 어떻게 변화해 갔고 홍콩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냈는지, 그것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야만 한다. 그리고 양조위 같은 배우가 지금까지 일궈낸 상징성에 우리가 '아시안'으로서 무엇을 빚졌는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