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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이야기

예술에 대한 에세이-에 대한 감상이자 생각의 파장

박보나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by Good night and
XL


2022년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20세기 초-2차 대전 이후로 이어지는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세계 질서 속에 살고 있다. 혹자는 지금이 Glocalization= Globalization + Localization의 시대라고 한다. 지구는 하나가 된 동시에 좁아졌다. 미국의 부자는 한국의 부자가 되었고 한국의 거지는 중국이나 미국이나 인도의 거지와 같게 되었다. 전 지구적으로 계급은 고착 되었고 자본이 운용되는 현재의 상태에서 일어난 수많은 문제들이 계속해서 인류와 자연, 지구를 위험에 처하게 하고 있다. 고착된 질서는 전복될 수 없는 것일까. 위계의 전복이 아닌 해체는 어디서부터 시작돼야 할까.


분명한 건 '해체'는 때려부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질서를 굉장히 정교하고 촘촘하게 이해한 뒤에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성장의 반댓말, 자본주의의 반댓말을 찾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야만 한다. 구시대의 질서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뿐이다.


요즘은 우주 여행이 트렌디한 키워드가 돼 가고 있다. 현재 기술로서 지구를 떠나는 것(다른 행성에 정착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지만)은 비행기 여행만큼 기술적, 물리적으로는 어렵지 않은 일인듯 하다(경제적인 면에서는 또,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지구를 다 쓴 두루마리 휴지처럼 그냥 쓰레기통에 쳐박고 다른 삶의 터전으로 옮겨가면 되는걸까? 우주 여행 비용을 지불할 수 있고 지구 밖에서의 정착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결국 지구에서 생겨난 화폐를 가지고 가능한 일이라면, 이것 또한 자본주의의 확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까 사실은, 돈이 많든 적든 인간은 인간이고 인간이 무엇이냐면, 아무것도 아니다. 생산 수단을 가진 자들이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돈으로만 살 수 있도록 만들어가고 있을 뿐이다. 신선한 공기, 맑은 물, 이것들을 돈으로만 살 수 있다는 법칙을 누가 정했을까? 돈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면 돈으로 돌아가는 경체 체제가 완전히 해체 된다면 어떻게 될까? 화폐로서의 돈을 없앤다는 의미가 아니라, 교환으로서의 경제가 아닌 - 자본, 축적, 잉여, 사유(private) 이런 개념들이 모두 소멸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인터넷 이전의, 산업혁명 이전의, 농경시대 이전의, 수렵 채집 이전의-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며 인간이 인간란 종으로 진화하기 시작한 시점까지 생각해 보면 결국 인간은 너무나 평등하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동시에 삼엽충 혹은 나무 한 그루와 그다지 다른 점이 없는 존재-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철학적 이야기일까? 아니, 이보다 더 실존적인 이야기는 없다.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어떤 수많은 우연들의 일치에 의해 생겨난 존재일 뿐이며 필요에 의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특정 확률이 일어난 타이밍이 존재하기 때문일 뿐이다. 그럼 인간이 죽는 것만이 친환경일까? 그렇다면 애초에 인간이라는 개체가 발생한 것부터 자연의 모순이다. 자연은 스스로 소멸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단 결론밖에 없다.


죽기 위해 태어났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 의미없이 태어났지만 이만큼 지능이 발달해 버린 종(species) 된 이상 존재의 의미는 '억지로라도' 만들어서 찾는 수밖에 없다. 죽기 위해 태어났다고 숨만 쉬다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헤질 대로 헤진 낡아빠진 자본주의 속 톱니바퀴로 숨만 쉬는 존재가 될지, 새로운 공동체의 질서를 찾아 나서는 모험가가 될지는, 각자 알아서 선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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