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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이야기

Expat, 이주 노동자, 제1세계, 제7의 인간

존 버거 <제7의 인간>

by Good night and
"기계를 가진 자에게 인간들이 주어지는 것이다.

1) 내 친구들 중에는 해외로 이주한 한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꽤 있다. 그들은 미국의 마운틴뷰, 스위스 취리히, 싱가폴, 홍콩 등에서 Expat(해외주재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글로벌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입국할 때 공항의 이민국 사무소에서 떼지어 어떤 심사를 기다릴 필요도, 일하러 가고자 하는 나라에서 비자 발급이 불가해 불법으로 입국을 할 필요도 없다. 회사의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특수한 종류의 비자를 발급받아 수월하게 이민국 심사를 통과할 수 있고 자신들이 사는 나라의 현지인들을 만나면 BTS, 오징어게임 같은 키워드를 주로 들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기계적으로 분류하자면 이들은 해외 이주 노동자지만 아무도 이들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엑스팻"이라고 자칭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 자칭을 존중해 따라 불러준다.


jean_morh3.jpeg photography by Jean Morh

2) 내가 평생을 통틀어 가장 애착을 가졌던 국외의 장소는 홍콩이었다. 이질적인 광둥의 문화와 이제는 '레트로'가 된 80-90년대 홍콩 영화에 빠져있던 20대 시절, 매년 적어도 두번씩 홍콩을 갔었다.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점 그곳의 관광객이 아닌 명예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혼자)느끼기 시작했다.


2.1) 홍콩섬의 센트럴~코즈웨이베이까지 이어지는 MTR역 라인은 IFC나 타임스퀘어 빌딩 같은 랜드마크 고층 빌딩들이 즐비하다. 구글, 딜로이트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의 로컬 오피스가 입주해 있는 그 빌딩들의 저층은 대형 쇼핑몰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동남아시아의 습한 고온의 도시들이 으레 그러하듯 대형 쇼핑몰들은 지하철 역이나 옆 랜드마크 빌딩으로 이어지는, 지붕이 있는 에스컬레이터와 연결 통로들을 보유하고 있다.


2.2) 홍콩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온 입주 가사 도우미의 숫자가 많은 도시로도 유명하다. 냉전 시대 이후 홍콩은 중화권 도시 중 거의 유일하게 국제 무역/금융 도시의 역할을 수행했고 90년대부터 새 밀레니엄에 들어서며 서서히 그 위상을 잃어가기 전까지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주로 북미와 서유럽에서 온 백인들)이 거주하는 도시였다. 우리는 그 나라들을 "제1세계"라고 부른다. 이 도시에서 제1세계인들은 자기들의 고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격으로 "메이드"를 고용할 수 있었고 그런 메리트를 누릴 수 있는데 굳이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이 메이드는 가격도 쌀 뿐더러 제1세계에 사는 인간들처럼 '인간 대접'을 해줘야 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 한 명이 누우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벽에 닿는 창고에 재워도 그들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주는 푼돈을 고향에 부치며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홍콩의 주말에, 홍콩섬 쇼핑몰 빌딩들의 연결 통로를 지나가게 되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모두 깜짝 놀란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여자들이 그 통로의 끝에서 끝까지 모두 종이박스나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밥을 해먹고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주중에 회사나 학교에서 분주하게 일상을 보내던 1세계 엑스팻들이 주말이면 'family time'을 보내기 위해 집에 머물거나 혹은 주말은 일하는 날이 아니라 일당을 쳐주지 않기 때문에 메이드는 일터가 아닌 자신의 "집"에서 쉬어야 한다. 메이드들의 집은 어디인가? 필리핀과 인도네시아가 아닌, 구룡 반도나 홍콩섬에 그들의 집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같은 처지에 있는 자매들과 쇼핑몰 연결통로에서(최소한 지붕이 있어 비는 피할 수 있으므로) 임시 집을 짓는 것이다.


2.3) 홍콩이란 도시에 대한 애착이 커지며 이상한 당사자성(?)을 느껴갈수록 나는 외국인 메이드들을 포함한 홍콩의 경제적 하층민들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해졌다. 어떤 아름답지 못한, 정갈하지 못한 것을 마주했을 때의 불편함이 아니라, 죄책감에서 오는 불편함이었다. 그들이 종이 박스를 깔고 앉아 그 위에서 버너로 밥을 해먹는 토요일에, 나는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 IFC몰에서 비싼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내가 한 끼에 5만원하는 밥을 먹을 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집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jean_mohr2.jpeg photography by Jean Mohr

3) 이제는 아무도 "지구촌"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을 정도로 세계는 글로벌화-동시에 단일화-돼 있다. 70~90년대 경제 질서에 편입된 이주 노동자들과 밀레니얼-웹3.0-4차 산업혁명-코로나 시대의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많이 달라졌을까. '제 7의 인간'들은 지구가 단일화 되면서 더 많이 가난해졌다. 이제는 제 9의 인간 쯤 되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4) 존 버거는 꽤나 사회주의적인 관점을 가진 작가다. 사회를 바라보는 존 버거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계급 이야기는 피해갈 수 없다. 재밌는 건 아직도, 2022년에도, 사람들은 계급 이야기를 불편해 한다. 새 밀레니엄이 된지 22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사람들은 자본주의란 것이 자잘한 폐해가 있지만 추구돼야 할 가치 혹은 바꿀 수 없는 불가항력적 자연의 섭리 정도로 여긴다. 그 시스템 때문이 자신의 존재의 의미가 희석되고 인간의 존재에 대해 왜곡된 인식들이 계속해서 덧씌워지는데도, 아직 자신은 안전망 안에 있으니 자본주의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자본주의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편리한 시스템이다. 아웃캐스트의 목소리는 어차피 자동 음소거 되기 때문에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계속해서 시스템의 순결함을 주장할 수 있다. 기계(=돈=생산수단)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인간을 소유할 수도 있고 인간을 내쫓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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