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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이야기

존 버거의 네 계절

존 버거 <G>

by Good night and

(2022년 2월에 적은 트레바리 북클럽 독후감)


솔직하게 말해서, 이번에 읽은 존 버거의 네 권의 책 중 가장 어려웠고 근 몇년 간 읽은 모든 픽션을 통털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책이었다.

그래서 이런 것도 독후감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왜 이 책이 유독 내게 너무나 어려웠는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관념들의 나열이었는지에 대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1.당대의 시대적 배경이 다른 행성의 일처럼 생소했다.

나는 이 소설의 등장 인물들과 등장하는 사건들이 완전히 픽션인지 현실의 사건에서 차용한 것인지 단번에 구분 못할 정도로 당대의 이탈리아 역사에 무지했다. 그리고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지만 거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고유명사를 5개에서 10개씩은 검색하며 읽어나가야 할 정도로 인물과 시대적 배경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다 보니, 묘사나 내러티브에 집중하지 못하고 인물의 프로파일을 정의하며(누가 누구인지 분간하며) 읽어 나가기만에도 벅찼다. 나는 가장 사적인 이야기가 가장 공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픽션의 힘을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지적인 이탈리아의 역사에는 왜인지 몰입이 너무 힘들었다. 이탈리아에 가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아시아도 아니고 서양, 유럽 대륙 이야기라서 그런가.

중반까지 읽어나간 다음에야 나는 문제점을 깨달았다. 나는 픽션을 읽을 때 언제나 이미지를 상상하며 읽는다. 이 등장인물들이 어떤 옷을 입고 있을지, 어떤 모양의 거리를 걷고 어떤 톤의 액센트로 대화를 나눴을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버거는 그런 것을 묘사하는 데에 지면을 낭비해 주지 않았다.


2.나에겐 존 버거가 관념적으로 쓰는 언어들이 어려웠다.

이 클럽까지 합해 존 버거의 책을 총 5권을 읽었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존 버거 책 읽어 봤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 정도로 그의 세계를 이해했는지 의문이 든다. 클럽장님의 정확한 워딩은 사실 기억이 안나지만 이 클럽의 첫 모임 때, 시즌 내내 한 작가의 책을 읽는 것에 대해 '한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잡는 것'이던가 뭐 그런 비슷한 의미의 이야기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는 4개월 동안 존 버거의 책을 4권을 읽었고 그 전에도 한 번 읽어봤지만 여전히, 읽으면 읽을수록, 존 버거라는 작가의 세계의 친구는 커녕 지인조차 되지 못한 기분이다.

버거라는 작가에 대해 좀 더 친근함을 느낄 수 있을까,하는 기대로 <존 버거의 사계>라는 다큐멘터리도 봤다.(왓챠에 있고 2016년 EIDF 출품작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5년에 걸쳐 각종 계절과 각종 인물들과의 조우를 통해 존 버거를 촬영한 영상이다. 그리고 이 영상을 보며 확실히 느낀 것은, 나는 존 버거가 비평적이고 사회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손쉽게 이해하지만 그가 어떤 심상이나 서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외계어를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점이다. 그가 틸다 스윈튼과 영화적인 상상력을 논의할 때 나는 정말 맹세컨대 멍하니 움직이는 화면만 쳐다봤다. 누군가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대?라고 물어보면, 그건 하나도 모르겠고 틸타 스윈튼이 존 버거와 이야기 나누는 내내 사과 파이 만드는 것 같던데(사과를 깎고 크럼블을 반죽하는 것 같았음) 완성본이 궁금하더라, 같은 답변 밖에 못한다. 하지만 중반 쯤에 그가 영화감독, 시인 등의 패널들과 사회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은 너무나 명확히 무엇에 대해 어떤 관점을 관철하고 있는지 이해가 됐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은 존 버거와 나의 언어의 호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1번에 말했듯 나는 내가 가진 블록들을 조합해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미지가 그려질 때에 더 잘 몰입한다. 텍스트로만 이해해야 하는, 관념 그 자체의 상상에는 재능이 없다. 버거는 이미지를 묘사하지 않는다. 어떤 성정, 성질, 관념, 추상적인 관념들이 가지는 상호 관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이런 벽을 느낀 것은 보르헤스의 소설집과 히토 슈타이얼의 <면세 미술>을 읽었을 때에 이어 세 번째다.


그래서 사실 히토 슈타이얼의 책을 읽고나서 적은 메모기도 한데, 언어적으로는 존 버거의 소설을 수용할 수 있지만 이것에 대해 내가 느낀점이나 생각한 점을 내가 사용 가능한 언어로 풀어내기가 힘들다. 내 언어의 라이브러리가 너무 빈곤하고 내 조합 실력이 너무 저급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연이어 네 권이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새발의 피도 못 미쳤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오히려 한 권으로 속단할 수는 있었는데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 이래서 무엇이든 경험하고 알아갈수록 사람이 말을 아끼게 되는 것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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