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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night and Jul 03. 2022

Quiet As It's Kept

뉴욕 맨해튼, 2022년 6월 26일 일요일

오늘은 휘트니 뮤지엄에 가는 김에 아랫동네를 둘러보자 결심하고 길을 나섰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6월의 마지막 일요일이라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는 모양이다. 가죽 마스크를 쓰고 핫팬츠를 입고 체인을 두른 남자가 횡단보도에 서 있길래 오늘 퍼레이드가 있냐고 물어 봤더니, 당황한 얼굴로 잘 모른다고 한다. 분명 퀴어 퍼레이드 참가자의 차림새인데 내가 뭔가 질문을 잘못한 모양이다.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아침으로 거대한 와플과 아이스 커피를 샀다. 벤치에 앉아 먹으며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낙태죄 반대운동가들과 무지개 깃발을 들은 사람들이 단결을 외치며 사진을 찍는 걸 바라봤다. 미국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확실하게 다양성의 나라다. 물론, 뉴욕 한복판이니까 그런 것이겠지... 뉴욕에 도착한 첫 날 내가 미국에 체류 중인걸 아는 회사에서 보안 알림을 보냈다. 낙태죄 판결이 뒤집혀서 시내에 대규모 시위가 예정돼 있으므로 통행에 주의하란 내용이었다. 


낙태가 유죄라고 국가에서 선포하면 여자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을까? 그런 법으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여성들이 임신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지 않나, 이제. 오히려 임신이나 출산에 관심이 있는 여자들이 낙태죄 판결에 민감해 보이고, 정치적 관심사로 여자들을 그룹핑 했을 때 그룹 밖에 있는 여자들은 임신/출산을 포함해 별다른 신체적 자의식이 없어 보인다. 투쟁의 의미로 비출산을 선택한다기보다, 출산이든 비출산이든 그 때 가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겠다는 개인적 차원으로의 환원에 가까운. 물론 개인의 편린이 사회의 이데올로기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만 결국 이게 '탈정치화' 현상이겠지.


이 나라에서 먹는 모든 음식이 너무 짜서 매일 얼굴부터 발가락까지 팅팅 붓는다. 뭘 먹으면 소금기 때문에 금방 목에 가래가 끼고 혀가 아리다. 가장 안 짜고 간이 적절했던 건 어제 간밤에 우버이츠로 배달 시켜 먹은 비빔밥이었다. 그 비빔밥도 만족스럽게 조리된 음식은 아니었다. 비빔밥에 참기름도 들기름도 한방울 안 넣고 거기다 김치를 넣다니, 어느 나라 음식이냐. 비빔밥에 참기름은 필수, 김치는 무조건 반찬이지. 여하튼, 붓기를 빼기 위해 타들어가는 듯한 날씨에 땀을 주룩주룩 흘리며 팔뚝만한 스마트워터 물통을 옆구리에 끼고 걸었다. 타임스퀘어 앞에서 베슬Vessel까지 걸어 내려왔는데(중간에 밀크 바Milk Bar에 들러서 유명한 시리얼 라떼를 사 먹었는데 굉장히 그냥 그랬다. 역시 넷플릭스는 환상인가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베슬 입장은 불가능했다. 건물 보수 작업 때문인지. 머리에 오른 열을 좀 식혀야 할 것 같아 바로 앞 쇼핑몰로 들어 갔더니 뉴욕에 있는 모든 아시안들 다 여기 모여 있었다. 그나마 덜 짠걸 먹고 싶어서 점심은 쇼핑몰 안 식당에서 샐러드를 먹었는데 위에 토핑으로 올린 연어랑 브리스킷이 또 무지막지하게 짜다. 그래도 시원하고 화장실 깨끗하고 사람 안 붐비고 역시 여름엔 쇼핑몰이 역시 최고다. 이건 동남아에서 배운 교훈인데 역시 이 안엔 아시안만 버글버글하다. 지금도 내 앞자리에 땀 한방울 안 흘린 보송한 얼굴의 한국 여자분들이 즐겁게 떠들고 계신다.


어디든 엉덩이만 붙이면 업무 핸드폰을 확인한다. 한국에 내가 부재중인 동안 못다 처리한 일들이 엄청 쌓여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가 일을 찾아 하지 않으니, 대기열에 아무것도 쌓이지 않는다. 역시 '나 없으면 안되는' 일 같은 건 허상이라니깐.


지도를 찾아 보니 하이라인 파크의 양 끝에 베슬과 휘트니 뮤지엄이 이어져 있어, 이 공원을 쭉 따라 걸으면 되겠다 싶어서 또 걸어 내려갔다. 하이라인에서 내려다 보니 다운타운의 거리가 텅 비어 있었다. 퍼레이드 때문에 미리 교통 통제가 돼 있었단 걸 이 때 알았어야 했는데. 


하는 줄 모르고 갔던 휘트니 미술관의 비엔날레가 너무 좋았다(2022 휘트니 비엔날레 설명: https://www.mhn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6673). 미술에서 새롭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구태의연해 한 시절에 오히려 전통적인 기호의(symbolic) 역할로서 예술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품들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Alfredo Jaar의 영상 및 선풍기 설치 작업이었다. 검은 방에 들어가면 2020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된 Black Lives Matter 시위 현장을 촬영한 영상을 몇 분간 보여 준다. 경찰이 모인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사용한 방법들을 한정된 공간 안에 관객들을 몰아넣은 상태로 청각과 촉각적으로 재현하는데, 영상 속에 자욱한 연기가 퍼지며 화약이 터지는 소리를 들려오고, 그 다음에는 헬리콥터가 등장하면서 천장에 달린 선풍기 바람이 얼굴을 강타한다. 문득 그 자리에 모여 있는 백인들 중 실제로 무장한 공권력과 대치하는 시위에 참가 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증이 들었다. 방패를 들고 헬멧을 쓴 미국 경찰의 모습엔 광화문 광장 앞에서 본 의경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대포에서 뿜어진 물보라 속 캡사이신이 눈과 호흡기를 강타해,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작업은 그 층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 사람들이 줄지어 관람실에 들어가고 줄지어 나왔는데, 나오는 사람들을 인터뷰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뻔해도 결국 소수자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현대 예술의 의의라 할 수 있지 않나. 맨해튼 한복판에서 아시안 여성이 가장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주제기도 하고. 


Alfredo Jaar의 관람실 앞에는 트립티콘 같은 형태로 영상을 틀어주며 아메리카 원주민의 노래를 들려주는, 나바호 네이션 출신 아티스트 Raven Chacon의 <Three Songs>가 재생되고 있었다. 아랫층에 있는 

Pao Houa Her가 찍은 몽족들의 스냅 사진도 너무 좋았다.https://mspmag.com/arts-and-culture/hmong-artist-pao-houa-her/


그러니까 결국 2022년, 세계는 하나의 체제로 통합되며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배를 타고 평편한 바다를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지구 끝에 도달해 떨어져서 죽는다 믿던 시절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에는 자기처럼 생기고 자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만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시절(혹은 그런 자들만 '사람'이라고 믿었던 시절)의 세계는 단절 돼 있었다. 사람들은 단절 된 세상을 단순하게 받아들였다. 위계 질서로 현상을 해석했고 폭력으로 낯선 것들을 다스렸다. 


하지만 단절된 세계는 지구란 이름의 행성에서 점점 하나로 합쳐진다. 우리는 연결 돼 버렸고 세계 시민이 되었다. 나는 뉴욕에 와서, 다른 민족과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작가들이 만든 결과물들을 보고 있다. 살아남아 자신의 정체성을 선보이기 위해 미국으로 모여든 한국인, 몽족, 칠레인들이 예술을 가지고 서로 말하고 있다. 생김새, 쓰는 말, 먹는 음식도 다른 그들의 문제는 나의 문제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어이 알아냈다. 문명인이 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공부하고 실천해야만 하는 시대다. 자의든, 타의든. 


미술관을 나와 그리니치 빌리지를 가로질러 소호로 가려고 했는데 모든 길이 다 막혀 있었다. 퀴어 퍼레이드 행렬이 다운타운까지 내려 모양이었다.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인파가 많았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분명히 코로나에 걸릴 것 같다는 생각에 나 혼자만 마스크를 쓰고 돌아 다녔다. 난 며칠 뒤 한국에 입국해야 하니, 혼자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동양인을 현지인들이 아무리 쳐다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 하게 맞닥뜨린 퀴어 퍼레이드는 정말 재밌었다. 서울 시청 앞 퀴어 퍼레이드도 가 봤지만 역시 외향인들의 나라에서 열리는 축제는 달랐다. NFL, NBA부터 세일즈포스까지 유수의 대기업들도 퍼레이드 카를 협찬했고 자랑스레 자신들의 로고를 달았다. 그 퍼레이드 카에 타고 있는 파티피플들의 끼도 달랐다. 모두가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에서 정신을 놓고 춤 추고 노래를 불렀다. 남녀노소 불문 어찌나 다들 트월킹을 해대는지 내가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구경한 엉덩이 수보다 이날 하루 동안 길거리에서 보는 엉덩이 수가 훨씬 많은 것 같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즐거워 보여 역설적으로 이 사람들이 평소에 느꼈던 억압의 무게가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한국처럼 다양성이 억눌린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불행하게 살고 있나, 서글퍼졌다. 그리고 결국 그리니치 빌리지를 지나갈 수가 없어서, 저녁으로 먹으려던 소호에 있는 가게의 쌀국수는 못 먹었다. 자동차는 물론이고 인파 때문에 자전거도 탈 수가 없어서 휘트니 뮤지엄 앞에서 미드타운까지 걸어왔다. 진짜 족저근막염 걸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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