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 night and Nov 04. 2022

11월 3일

2022년 가을 이야기

올해의 10월이 얼레벌레 끝나 버렸다. 서촌 오픈 마이크 시즌1도 이 달과 함께 끝났는데, 많은 상념과 숙제가 남았다.


시즌1 마지막 회차의 주제는 ‘외국어(혹은 영어)’였다. 영어라는 사족은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외국어가 영어라서 이해를 돕고자 붙여 보았다. 영어 원어민인 윌리엄이 호스트를 맡았다. 나는 원래도 웃기게 농담을 잘 짓는 재주도 없고 이 이벤트의 스타도 아닌 의무감만 지닌 '주최측'이라 이번에도 그냥 주제에 맞춰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외국어는 굵어진 머리로 다시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소통이 가능한 언어다. 그런데 모국어로 이야기 한다고, 기가 막히게 서로 말이 잘 통하나? 인터넷에서 유명한 에피소드 하나. 미용실에서 샴푸를 받고 있던 손님이 미용사에게 ‘무릉도원이세요?’라는 질문을 받고 약간 민망해하며 ‘아 네, 무릉도원이네요’라고 대답했더니 미용사가 어이없어하며 ‘아니, 물 온도 어떠세요?’라고 했다 한다.


2022년 10월 29일 같은 재난 상황이 벌어지면 이 답답함은 이내 슬픔에 찬 분노로 바뀐다. 이 상황에 대해 이것저것 말을 얹어대는 사람들이 나를 몇 배로 더 극한의 분노로 몰아간다. 일순간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가족, 친구를 잃은 사람들을 위로할 새도 없이 오염된 언어의 홍수가 몰아친다. 논할 가치도 없는 저질스러운 이야기들은 차치하고, ‘비극 앞에 정치적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나는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삼풍 백화점 때도 세월호 때도 없던 “국가 애도 기간”이란 것을 갑자기 발 빠르게 선포해 버리고 모든 미디어에서 핼러윈이라는 단어를 언급 금지시키는 정부의 보도 지침이 그 무엇보다 가장 정치적인데. 윤 대통령한테도 '정치적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해보시지... 


‘Send my prayers and thoughts’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미국에서는 총기 난사 사고가 반복되며, 소셜 미디어에 범람하는 이 표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여론이 있었다. 총기 사고가 나고, 사람들은 슬퍼하고, 기도와 애도를 보내고, 잊는다. 그리고 또 총기 난사 사고가 일어난다. 심지어 가족 친지가 자연사한 경우에도 ‘그들은 늘 기억하자 ‘라는 위로를 하는데, 한 자리에서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100명도 넘는 상황에서 “아무런 복기도 하지 말고 조용히 슬퍼하기만 하자”는 말이 어떻게 탈정치화 된 언어일까나.


2021년 5월에 광주 비엔날레에 다녀오고서도 썼는데, 한국 사회는 비극의 후속 조치에 대해 어이없을 정도로 미숙하다. 삼풍 백화점 옆에 살았던 나는 아직도 건물 두 개가 그대로 무너져 내린 그 자리에 위령탑 하나 없이 아파트를 지어 올렸고 지금 대통령이 그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그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된 것도 아니고 국민들이 직접 자기 손으로 뽑았다는 사실도.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아시안이라는 사실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거기 다녀온 친구네 집에서 함께 뉴스 속보를 봤음을, 10월 28일에 이태원에 갔었다는 걸, 전부 큰 소리로 계속 외치며 사는 것만이 비극의 목도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사회의 비전까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확히 모든 것을 기억하고 끊임없이 증언해야만 하는데. 그런데... 


눈을 뜨면 ‘여자는 운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는 동료, 비키니 위에 갑옷을 입은 여자 엉덩이를 수박만하게 그리는 원화가, "그 사람 게이에요?"라고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치는 후배 등등이 득시글 대는 회사로 출근해야 한다. 사회생활을 계속 이어 가고 싶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늘 모든 상황을 농담처럼 큰소리로 웃어넘기고, 그들이 말할 때 책상 밑이나 주머니 속 같이 안 보이는 곳에서 손가락으로 뻐큐를 하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역겨운 사회 속에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오픈 마이크를 호스팅 하며 배운건 생각보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는 점, 거기엔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전혀 신경 안 쓰는 사람과 정반대로 과민하게 신경 쓰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는 점이었다. 네 번째 오픈마이크 쯤이 되자 나는 반복적으로 남자들이 하는 ‘작은 고추 개그’를 듣는 것이 지겨웠다. 남자들을 전부 기분 나쁘게 할 각오를 하고 더 이상 같은 농담을 그만 듣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작은 고추 농담 그만하세요, 그거 개그 아니고 다큐임’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온 남자들 중 아무도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모두 내 이야기에 웃고 있었다. 순수하게, 정말 내 이야기를 개그로만 받아 들이고 있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건 남자들은 여전히 강자고 여자는 소수자기 때문이다. 사회 구조가 뒤집히지 않는 한 아무리 내가 불쾌한 조크를 해도 남자들에겐 위협이 되지 않는다. 말티즈가 아무리 짖어대도 무섭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짖는 게 말티즈가 아니라 핏불테리어먼 어떨까. 웃자고 한 이야기여도, 악의가 없어도, 강자의 발화는 약자를 향한 폭력이 될 수 있다. 매일 역겨운 사람들의 집단에서 개인의 생존에 연연하느라 나는 이 기본적 구조의 이해를 잠시 잊고 있지 않았나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남성들도 나와 동등한 시민 사회의 일원이다.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사실을 힘겹게, 마침내 받아 들였다. 탈정치 탈정치 신나는 노래를 부르는 우파들도, 아크로비스타에 사는 대통령도, 나와 같은 시민 사회의 동등한 일원이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가 어떻게 어우러져 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최적의 균형을 찾아 나가고 싶다. 


첫번째 시즌의 마지막 오픈마이크에서 “결국 언어는 발화자의 인격과 정체성의 발현일 뿐 진짜 본질과는 아예 관련이 없다”에 이어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 "여러분께 익숙한 언어로 저를 소개해 볼까요. 저는 꼴페미, 빨갱이, 그리고 기타 등등,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모든 단어가 바로 제가 맞아요. 무엇으로 부르든 그것은 제가 아니라 당신의 정체성이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말로 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