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월 Snoot 수업 두번째 주제
'지금 가장 좋아하는 신발', 단숨에 대답할 수 있다. 올해 초 늦겨울에 산, 신발코와 뒷꿈치에 노란 배색이 된 나이키 에어조던. 내가 노란색을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매장에서 호박벌을 연상 시키는 이 두툼한 신발을 보자마자 신어보고, 그 자리에서 샀다. 에어조던을 신은 거울 속 내 모습이 맘에 쏙 들었다. 그 날 입고 있던 옷과는 색감도 스타일도 전혀 안 어울렸지만 중요치 않았다. 노란색 에어조던을 신은 나 자신이 좋았으니까.
연초에 겨울에 극장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았다. <슬램덩크> 같은 만화는 책으로 봤는지 티비에서 봤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대충 캐릭터 이름이며 관계, 기본 전개 정도는 아는 법이다. 북산의 모든 경기를 다 기억하진 못해도 단발머리 정대만이 곤죽이 된 얼굴로 농구가 하고 싶다고 우는 에피소드만큼은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날 극장에서 새로운 형식으로 되살아난 북산고 주전 선수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이렇게 슬램덩크를 좋아했었나?'싶어 가슴이 뛰었다.
나는 스스로를 "청춘 중독"이라고 표현한다. 풋풋하든 비참하든 나는 청춘이 나오는 콘텐츠를 너무나 좋아한다. <슬램덩크>에서는 중고등학생 시절, 여름 체육시간에 맡던 땀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 냄새가 코를 찌를 땐 너무 불쾌했는데 관념 속의 땀냄새는 향수를 일으키는 매개체가 되었다. 극장을 나와 서태웅 전신대 앞에서 셀카를 찍는 친구를 보는데 문득 농구화가 갖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 신발을 사고 나서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가 뮤직 비디오에서 같은 신발을 신고 나온 걸 봤다. 나를 웬만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엔시티 드림의 열성팬인걸 다 안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물으면 나는 고민 끝에 간신히 <헬로퓨쳐>를 꼽으며, 엔시티 드림의 이 노래가 나에게 어떤 젊음의 감상을 일으키는지 구구절절 설명하곤 한다. 물론 질문한 사람은 '젊음'같은 단어가 나올 때부터 제대로 듣지도 않지만. 엔시티 드림을 좋아하는 이유도 슬램덩크와 비슷하다. 청소년기, 청년기를 지나고 있는 개성있는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팀으로써의 성취를 위해 달린다.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무대 위에서 환하게 웃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그 모든 과정이 내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나의 청춘은 무기력하고 지루했다. 질릴 정도로 뭔가를 열심히 해본 적도 없으면서 매일 권태로웠고, 동시에 그런 자신을 혐오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스스로 좀먹던 시기였다. 나의 불완전함이 죄악 같았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성숙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어른을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릴 땐 스스로 어설픈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걸 받아들이면 됐다는 건, 나중에야 깨달았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이상하다. 나의 결핍이 자꾸 투영되니까. 발등과 발바닥을 감싸는 합성 소재의 발 가리개일 뿐인데, 특정 신발이 다른 신발보다 더 충족감을 준다는 건 웃기는 일이다. 노란색과 흰색이 섞인, 검은 라이닝의 '에어 조던'이란 이름의 운동화가 나에게 그저 발 보호구가 아닌 청춘의 상징이고 그 이유도 슬램덩크나 엔시티 드림처럼 소년들이 떼로 나오는 콘텐츠 때문이라니.
영원히 나이 먹지 않는 그들(아이돌도 일종의 캐릭터고 항상 더 어린 사람들로 대체 되니까...)을 보며 나는 내가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청춘을 그리워한다. 에어 조던을 신은 채 나는, 고교 농구선수 혹은 아이돌 연습생들의 눈물과 피땀과 환희가 내 것인마냥, 착각 속에서 전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