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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앤디 Jun 20. 2021

만보 걷기가 살린 마흔의 체력

그 해, 집순이가 선택한 최초의 운동이란

무리하지 마.

오천보만 하던지. 


남편이 던진 한마디. 실눈을 뜨고 슬쩍 째려본다. 당신의 속마음이 보인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보아하니 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것저것 벌려놓은 것 같은데...... 요즘 조금 까칠한 거 보니 잘 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네? 왜 저렇게 사서 고생이지? 별반 달라질 것 같지 않구먼. 그냥 좀 편하게 살지. 


나도 속으로 말해본다. 오천보만 하라니 지금 나 무시하는 건가, 작년 하반기 벌써 잊었어? 그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만보 걷기를 백일이나 했는데, 못할 것 같아? 애들이 걱정되어서 그러는 건가, 아니면 내가? 아니지 아니지, 내가 지치면 당신이 힘드니까... 그래, 그런 거지? 솔직히 말해.


모두가 연결된 세상이라지만 가족의 연결은 그런 느슨한 연결쯤은 훌쩍 뛰어넘고도 남는다. 남편과 나, 어린아이 둘.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꽁꽁 묶여있다. 돌봄을 위한 도움을 받을 길 없는 우리는 한 사람이라도 아프거나 우울하면 안 된다. 일상이 흐트러지고 모두에게 금세 전염이 되고 마니까. 그렇다, 우리는 운명 공동체다. 



운명 공동체 (運命共同體)

생사나 존망에 관한 처지를 같이하는 집단 또는 사회. 


이 말은 아주 흔하게 쓰이는 단어일지도 모르지만 이면에 상당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 다섯 글자로 이루어진 '그냥' 단어가 아니라 생활이고 일상이다. 생사나 존망에 관한 처지를 같이 한다니, 이 끈끈한 관계를 섬세하고 치열하게 조율해 온 사람은 그 단어의 무게를 안다. 


남편은 나에게 '꿈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일 그만뒀으면 좀 즐겁게 편하게 살지 뭘 그렇게 끙끙대는지 가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늘 읽고 쓰고 일을 벌인다. 밤마다 무슨 무슨 모임을 하고 있는데 크게 돈이 되는 일 같지도 않다. 차라리 가계를 꼼꼼히 처리하거나 실속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별로 현실적이지 않은 사람 같단다. 


그런데 이건 뭘까. 자격지심인가. 따지고 보면 남편은 그냥 하는 말이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말하는 것이고 부드럽게 에둘러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데 왜 나는 늘 발끈하면서 신경질이 날까. 마치 자존심을 구기는 말로 느껴진다. 베베 꼬였다. 








코로나의 해, 작년 봄과 여름 사이, 많이 지쳤다. 사실 그 해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투쟁 끝에 지금은 아니지만 독. 박. 육아였다. ('독박'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어감이 별로다.) 아이들과 함께 나는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피곤에 절어 있었다. 


체력에 있어서는 지인들의 선험적 예언이 적중했다. 서른여덟 살 즈음부터 체력이 티 나게 훅훅 떨어지더니 아픈 곳은 더 아프고 안 아픈 곳도 아픈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 어느 것이 먼저랄 것 없이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아프고,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니 몸도 그 상태를 따라갔다. 


무리하면 어김없이 몸에 알레르기 반응이 생겨 가렵거나 포진이 올라오고 입병이 났다. 게다가 몇 년 전에 앓던 건초염과 류마티스 관절염이 도졌다. (몇 년대에 태어났냐고 묻지 마시라, 요즘은 3~40대에도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름 모를 병인지 혓바닥 주변이 빨갛게 벗겨지고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져서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조차 없었다. 


그리고 맙소사, 대상포진이 왔다. 어느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닐 테지만 알 것도 같다. 나부터 잘 돌봐야 되는데, 자꾸만 무슨 일을 또 벌려보겠다던 탓이다. 집 문제, 재정 문제, 신경 쓸 것도 많고, 일도 제대로 되지 않고, 인간관계도 늘 삐걱거리고, 내 몸뚱이 까지. 삶이 이런 건가. 쉬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마흔의 체력은 초라하고 처연했다. 








더 이상 유치원에 가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은 뭐가 있을까. 어른이 된 뒤로 요가 잠깐, 필라테스 잠깐 그 외에 운동을 해 본 적이 없다. 요가, 스트레칭, 가벼운 걷기, 그 외에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홈트를 해 볼까 하다가 문득 폰에 자동으로 찍힌 걸음 기록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 하루에 오천보를 걷는 날도 드물구나. 


공기가 좋지 않아서 집콕, 더워서 집콕, 감기에 걸렸다고 집콕, 동네에 확진자가 생겼다고 집콕. 이유도 많다. 혼자 집에 있으면서 평온함을 느끼는 집순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집콕 생활은 혼자만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래, 뭐든 해야 돼. 살기 위한 운동이야, 일단 이 상태에서 조금만 걸어볼까. 


걷기는 운동화만 신으면 언제 어디서든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이다. 운동이라고 느껴지지 않지만 제법 운동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동네 호수 주변을 빠르게 걸었던 날들이 생각났다.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파서,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회사라는 소속을 말끔하게 포기하고 건강한 엄마 이전에 건강한 사람이 되기로 선택한 날. 그래, 걸어보자. 



걷기   © enioku, 출처 Unsplash



걸었다. 그냥 걸었다. 처음에는 걸음의 숫자가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아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홀로 밖으로 나왔을 뿐이다. '김밥 사 올게', '간식 사 올게' 라며 잠깐씩 나갈 구실을 만들었다. 둘째는 늘 다리를 붙잡고 매달려서 나를 주저앉게 했지만 어느 순간 홀가분히 나갈 수 있는 날이 자주 오기 시작했다. 


걸음보다도 일단 숨을 쉬는 것에 집중했다. 답답한 마음, 속상한 마음을 털어버리고 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가슴속에 더러워진 공기를 끌어다 내뱉고 천천히 새 숨을 들이마신다. 숨을 쉬는 것이 편안해지면서 걷기에도 조금씩 힘이 붙었다. 


하루에 오천보도 걷지 않았던 집순이가 걷다 보니 만 보 정도 걸을 수 있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만보까지 하려던 것은 아니지만 살기 위한 운동이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백일 동안 만보를 걷고 새해가 시작되었다. 








기왕 하던 거 새해에도 계속 이어가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어쩌나. 지금 눈앞에 읽어야 할 책이 있고, 써야 할 글이 있고 과제가 있다. 때마침 건네는 남편의 말이 비꼬는 것 같으면서도 달콤하게 들린다. 그러게, 힘들게 만보 걷기는 뭐하러 해. 오천보만 하면 어때, 무리하지 마, 무리하지 마,...... 마음속에 편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사실 이 말을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 좋은 생각이야. 만보, 오천보, 숫자는 중요하지 않아. 얼마나 집중하고 즐겼느냐가 중요하지. 기왕에 이렇게 된 거 인증하는 일들, 인증을 위한 인증은 그만 두자. 이런 건 또 이 때다 싶어 재빨리 수긍하고 받아들인다. 


더 이상 걸음수를 측정하는 일은 의미가 없어졌다. 좋은 점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아도 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디지털 디톡스를 하고 있지만, 조금 더 그 시간을 적극적으로 쟁취하고 싶다는 바람까지 끌어 와 오천 걸음을 합리화한다. 



겨우내 잠을 푹 잤다. 알람하지 않고 일어나는 새벽, 주방에서 체조를 하고 몸과 마음을 찬찬히 다스린다. 물 맛이 달다. 쓰고 읽는 일상이 이어진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스트레칭하고 집안을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아이들과 함께 방방보드에서 30초쯤 뛰기도 한다. 


그런데 이걸로 운동이 되겠어? 겨우 되살려 놓은 체력이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아 찜찜하다. 괜찮아. 겨울이니까. 곰처럼 겨울잠도 푹 자고 느긋느긋 천천히 살아보자. 봄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마음으로 말이야. 그 때 움직이려면 지금은 아껴둬야지. 언제나처럼 곧 봄은 오고야 말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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