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사탕앤디 Jun 26. 2021

걷뛰 첫 날/ 그런데, 꼭 달려야겠니?

봄, 달리기는 질색인 사람이 달리기 시작하다


봄에는 달리기를 해 볼까. 

문득 생각이 그런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겨울잠을 자면서 슬슬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었는데, 마침 전혀 다른 일로 에너지를 발산해보고 싶었던 걸까. 


나는 산책을 사랑한다. 걷는 것이 달리는 것보다 백배쯤 좋다. 달리는 건 뭐랄까, 좀 무리스러운 행동처럼 느껴진다. 생각만 해도 헉헉대는 숨과 땀이 느껴져 피곤하다. 천천히 걷는 길에 보고 느끼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달려야 하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달리기는 정말...... 질색이니까. 


그런데 달리기를 해 보겠다니 무슨 바람이 불었던 걸까. 그것은 '때로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답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말하곤 하지만 사실 마음속에 편견이 가득하다. 봄에는 질색하는 것들에 사랑을 건네보자는 마음속의 외침이 들리고 마음 한편에 작은 씨앗이 톡 떨어졌다. 








2020년 코로나 덕분에 두 달 반 정도 겨우 등원을 했다. 아이들은 유치원보다 집을 더 좋아했고 둘째는 종종 등원을 거부하며 드러눕곤 했기에 그만두는 선택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겨울까지 방목을 가장한 홈스쿨이 이어졌다. 


겨울은 길었다. 아직 계절이 끝나기도 전에 가을씨의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았다. 개학 소식도 솔솔 들린다. 최종 결정이 어떻게 내려질지 날마다 뉴스를 새로고침 하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저학년은 매일 등교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들려오지만 뉴스 하나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는 초보 엄마는 혼란스러웠다. 


매일 등교를 하는 것도 마음이 쉬이 놓이지 않고, 등교를 하지 못하는 상황도 염려가 된다. 이래저래 부모의 자리는 그럴 수밖에 없나 보다. 관리는 잘 될는지, 친구들과 대화라도 할 수 있는 건지, 적응은 잘할는지, 급식은 먹지 말고 하교해야 하나, 다들 어떻게 하고 있나 궁금하다. 다른 엄마들의 마음도 비슷한지 유치원을 함께 다녔던 친구들 단톡방에 속속 소식이 들려온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입학을 했다. 올해 입학이라 얼마나 다행이냐며 선배들의 '라떼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피식, 웃었다. 그래, 초1 엄마라 다행이다. 첫 주는 적응 기간이라 두어 시간 있다 돌아오는 일정이다. 앞 날이 이렇게 불투명한 때가 있었던가. 어떻게 될지 몰라 돌봄 교실을 신청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그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만을 바랐다. 


아이를 기다리며 빨래를 돌리고 책을 몇 장 읽었다. 노트에 조금 끼적이고 오랜만에 인스타를 열었다. 알람이 가득하다. 스윽 넘겨보다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내 눈을 의심했다. 내 눈앞에 러닝 크루 모집 글이 보인다. 다음주터라니 날짜도 딱 맞는다. 


역시 생각하면 현실이 된다더니, 필요로 하는 것들은 끌려오게 된다더니 지금인가 보다. <아티스트 웨이>에서 말하는 동시성에 대한 이야기가 머리를 톡. 하고 두드린다. 조심스레, 그렇지만 번쩍! 손을 들었다. 실 같은 연결만 있을 뿐 잘 모르는,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끌리는 사람을 향해. 


그런데 이상하다. 왜 함께 뛰어야 하는 걸까. 글쓰기도 책 읽기도 달리기도 어쩌면 철저하게 개인의 일인데 말이다. 아무리 누가 무엇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들, 좋은 팁을 전수받는다고 한 들 스스로 달리지 않으면, 스스로 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힘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놈의 책임감이라는 게 뭐길래. 하고 싶은 일들, 또는 해야 하는 프로젝트 팀 안에 있으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하게 된다. 목표대로 백 퍼센트 달성하는 일도 생기고 반만 해도 애썼다, 잘했다며 서로 위로하고 토닥이기도 한다. 


큰 틀 안에서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니 좋아하고 자주 쓰는 표현인 '따로 또 같이' 그게 맞다. 그래 한 번 해 보자. 아참. 그런데, 인증 안 한다면서 지금 또 인증하러 들어가는 거야?! 음...... 어! 이거 인증 아니고 기록이야 기록. 또 한 번 자기 합리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달리기를 시작한 날. '다시 건강한 사람 프로젝트' 첫날이다. 세상에나 어린이들이 학교를 가고 유치원을 갔다. 12시 조금 넘으면 하교시간에 맞춰서 데리러 가야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게 어디냐. 황금 같은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미세먼지가 가득하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동네를 딱 2km만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날이라 큰 기대는 없었다. 달리기는 나와 거리가 멀어, 그렇지만 아주 조금만 달려보지 뭐. 이런 마음이 컸다. 


역시나. 천천히 뛰기 시작했더니 1분 정도 뛰었나. (체감상 1분이지 사실 30초 정도 지났는지도 모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마스크 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입가로 떨어진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어, 어, 어, 나 괜찮은 거야? 속도가 알아서 저절로 줄어든다. 달리기에서 빨리 걷기로, 빨리 걷기에서 천천히 걷기로 바뀌었다. 그래, 뭐가 그리 급하다고. 백일째 되는 날도 아니고 이제 겨우 시작했잖아. 


천천히 걸으니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어떤 이는 친구와 나란히 팔을 휘두르며 빠르게 걷는다. 그 와중에 담소를 나누며 웃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마라톤을 준비하는지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빠르게 달린다. 몸이 불편한 노부부는 서로를 부축하며 천천히 산책을 하고 강아지와 느긋하게 걷는 사람도 보인다. 


목표대로 딱 2킬로미터를 걸었다. 달리기를 해야 하지만 뛰었다고 하자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걸었다고 하자. 아니 걷뛰 했다. 오랜만에 하는 운동, 오랜만에 흘리는 땀방울에 내심 기분이 좋다. 



2021 다시 건강한 사람, 걷뛰 첫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연드림에서 장을 보았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주말에 노래를 부르던 롤케이크와 콩나물 두 봉지. 이건 콩나물밥 해 먹어야지. 나물 무침도 하고. 입이 조금 까다로운 겨울씨가 유일하게 잘 먹는 반찬. 


그날 밤, 남편이 또 묻는다. 

달리기 했어? 그런데, 꼭 달려야겠어?

무리하지 마. 절대로. 알았지?


어, 절대 무리 안하니까 걱정하지 마. 

내일은 2.2킬로만 걷뛰해야지. 

Day by day, I'm getting better and better. 



매거진의 이전글 만보 걷기가 살린 마흔의 체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