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오고야 말았다
언제 오나 싶었는데
그 이름 마흔.
마흔 앓이는 딱 마흔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일찍,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 일찍 찾아오는 것 같다. 물론 나이에 상관없이 내내 비슷한 고민을 껴안고 살아온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불현듯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는 불안감과 함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자아 찾기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
그런데 조금 어이없었던 것은 정작 40살, 마흔이 되니 아무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무덤덤한 상태에 더 가깝다. 말 그대로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버린 걸까. 아니면 바닥에서 지겹도록 허우적대서 그랬던 걸까. 스무 살은 어른이 된 것 같아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좋았고 서른 살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 것 같아 좋았다.
아, 그러고 보니 삼십 대 후반의 방황은 이전 것과는 양과 질이 달랐다. 방황 안에 이제 '가족'이 들어있다. 나 혼자 좋으면 취하고 싫으면 때려치우고 그럴 일이 아니었다. 대략 3~4년 동안 남편과 나는 집 문제로 에너지를 소모하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하나가 꼬이면 다른 것도 덩달아 꼬인다더니 일과 관계마저 엉켜버렸다. 이것이 진흙탕이 아니면 뭘까. 바닥에서 허우적댔다. 올라가지지 않았다.
그러다 마흔이 되었다. 코로나가 왔고 거의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집'이라는 공간에서 날마다 비슷한 일상이 펼쳐졌다. 가족이 한 공간에 있는 이 풍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간. 집 안에서 아이들과 남편과 내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한다.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이라고 코로나가 가져온 '돌밥 돌밥'이라는 유행어에 걸맞게 아침을 먹으며 점심을 생각하고, 점심을 먹으며 저녁 메뉴를 정한다. 최대한 손이 안 가고 설거지를 적게 만드는 한 그릇 메뉴로.
삼십 대 중후반에서 마흔이 오기까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꼈지만 사실 아닌 것 같다. 달라진 것이 꽤 있다. 변화가 그리 크지 않았다고 느낀 것은 아마도 서서히 적응하며 방향을 틀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쓰기가 한몫을 톡톡히 했다. 글을 썼다. 매일 끄적이며 화도 내고 울기도 하며 나를 마주했다. 동네를 걸으며 공기를 가득 담고 심호흡으로 다시 토해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지나온 과정을 단 몇 문장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런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나의 마흔은, 생각보다 좋았다.
마흔이 가까워질 무렵 알았다. 늘 이상을 꿈꾸고 이상을 말하지만 이제 내 인생에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보다는 살아가며 조금씩 방향을 트는 것이 더 자연스럽겠구나. 더 이상 꿈꾸는 일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을. 이상과 현실의 갭을 바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도전하고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더 현실적으로 따져보고 결정하고 이어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가장 큰 변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불혹이 불혹이 아님을 깨닫고 인정하는 순간들이다. 메타인지를 높여 나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너 이건 좀 괜찮았어’, '이건 좀 별로다', ‘그때는 이렇게 대응했어야지’라는 자기반성도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렇게 생겨 먹었는데’ 하는 자기 인정이기도 하다. ‘왜 이렇게 흔들리지’하는 불안이 아니라 ‘나 지금 흔들리는구나’, ‘배 아프구나’, ‘질투하는구나’라는 자각이다.
해가 바뀌고 플러스 1이 된 지금 작년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중심에 가족이 있고 해 오던 대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온택트를 십분 활용해 글쓰기 모임에서 느리게 읽고 쓰고 이어간다. 온라인에서 만나는 끝없는 정보와 정보를 가장한 광고 안에서 나는 적절히 액션을 하고 있는가 하면 다시 헤매기도 한다.
사실 ‘너나 잘해, 누가 누굴 챙겨.’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여전히 앞뒤 재지 않고 일을 벌인다. ‘굳이 뭐’라고 생각했다가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프로젝트도 열어보고 부질없다던 소셜 네트워크에도 잘만 접속한다. 그러다가 다시 쓸데없이 감정을 소모하고 낭비하는 일이 이어진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만든 책임에 갇히는가 하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일을 혼자 끙끙대고 있다.
역시나, 사람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니다. 변화가 쉽지 않고 어렵기만 한 거라면 그저 조금만 방향을 틀어보자. 특별한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인정하고 나라는 사람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자.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을 애써 미루지는 말자. 어느 책 제목처럼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체력도 더 키우고. 지혜도 더 키워보자.
이제는 만 나이도 40이 넘었다. 빼도 박도 못하는 40대의 나를 아름답게 가꾸어가기를. 그 과정에서 언제라도 스스로에게 진실하기를. 현실에 발을 디디고 뚜벅뚜벅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내일은 모르겠고, 모레는 더 모르겠고, 그러니 일단, 오늘 하루만 잘 살자.
@글쓰는 별사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