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남은 한 사람의 기쁨

Plaisir d'amour

by 김환

고등학교 시절, 내 책장 한쪽에는 『세계애창명곡집』이 놓여 있었다.

<내 마음>, <사랑의 기쁨>, <아 목동아> 같은 곡들이 실린 책이었다.


나는 그 노래들을 읽듯이 넘겼다.

언젠가는 부르게 될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책장은 접혀 있었고, 종이에는 손때가 묻어 있었다.

그때의 마음도, 아마 그 안에 함께 남아 있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2024년 가을,

제주 애월의 한 카페에서 나는 그 노래들을 다시 만났다.


키 큰 야자수들이 마당 가장자리에 서 있었고,

그 공간은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빈 그릇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앞에 섰다.

예닐곱 명의 청중.

어깨가 펴지고 심장이 빨라졌다.


낯선 이들 앞에서 노래하는 일은

취미라기보다 몸에 남은 습관에 가까웠다.


노래가 끝난 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카페 공동대표 중 한 명이 영국에서 수학한 피아니스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 한 곡 해보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두 번째 무대는 매끄럽지 않았다.

반주에 몸을 싣지 못했고, 음정이 흔들렸다.

아카펠라에 익숙해진 탓인지, 긴장 때문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그 어긋남이 이 곡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사랑의 기쁨>은

시인 플로리안(1755~1794)의 시에

마르티니(1741~1816)가 곡을 붙인 노래다.

1784년에 발표되었고,

프랑스 샹송으로 알려졌지만

그 뿌리는 이탈리아 바로크 가곡에 가깝다.


선율은 단순하고, 감정은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 노래는 오래 남는다.


십 대의 나는 이 곡을 ‘동경’으로 불렀다.

시간이 흐르며 이 노래는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감정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세대를 건너 마음을 잇는 언어처럼 느껴진다.


마르티니는 1741년 독일 바이에른 주 프라이슈타트에서 태어나

페르트에게 작곡을 배우며 음악적 기초를 다졌다.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1798년부터 1802년까지

파리 음악원에서 감독이자 작곡 교수로 활동했고,

1814년에는 국왕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삶과 음악은

<사랑의 기쁨>에 응축된 서정처럼

시대를 넘어 오늘까지 감동을 전한다.


그의 이력보다도,

한 곡으로 남아 오늘의 나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2024년 9월 29일,

나는 파리의 국립음악원을 찾았다.

마르티니가 몸담았던 음악의 자리였다.


일요일 오후의 음악원은 고요했다.

멀리서 연습 소리가 간간이 들렸고,

교정에는 플라타너스 잎이 조용히 흩어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음악이 배우는 대상이라는 사실이 분명했다.


파리는 흔히 ’ 예술의 도시’라 불린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시각에만 머물지 않는다.


미술, 음악, 연극, 오페라, 영화까지.

모든 장르가 숨을 쉬듯 공존하며

오랜 세월 서양 음악사의 심장부를 이루어왔다.


나는 8구의 한 포르투갈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마친 뒤,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줄지어 선 거리를 따라

작은 배낭을 메고 8킬로미터를 걸었다.


두 시간여 걸음 끝에 도착한 파리음악원.

그곳은 음악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동쪽에는 음악 박물관과 콘서트홀이,

서쪽에는 성악과 무용을 위한 교실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플라타너스 잎이 흩날리는 교정 위로,

오래된 마디처럼 남은 건축의 음률 속에서

지금도 음악은 흐르고 있었다.


파리 국립음악원은

한 시대의 음악가만을 길러낸 배움터가 아니다.


18세기말,

‘음악은 더 이상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의 것이어야 한다’는

프랑스혁명 정신 아래

여러 음악 학교가 통합되며

국립음악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후 이곳은

세계 각국 음악 인재가 모여드는

최고의 교육기관이 되었다.


이 모든 역사와 제도를 지나,

결국 내게 남은 것은 한 곡의 노래였다.


제도가 아니라,

나를 이곳까지 데려온 것은

<사랑의 기쁨>이었다.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를 작곡한

미키스 데오도라 키스 역시 이곳을 거쳐 갔다.

고향의 한 선배도 이 음악원에서

1년간 그레고리오 성가와 지휘법을 공부했다.


일흔을 넘긴 지금도

돈과 명예 대신

소통과 복음을 위해


맑은 음성으로 성가곡을

“백 세까지 노래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 소망이

끝내 음악처럼 이어지기를

조용히 기원했다.


오후 3시,

고요 속에 잠긴 음악원의 교정을 천천히 걸으며

흐린 하늘 아래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수대의 물줄기는 배경과 겹쳐 선명하지 않았고,

‘Conservatoire National Superieur De Musique Et Dance De Paris‘라는

긴 이름을 카메라에 담았다.


파리음악원(사랑의 기쁨).jpg

209 Av. Jean Jaurès에 있는 파리음악원


비록 지금 내가 선 이곳은

240년 전 마르티니가 머물렀던 음악원 건물은 아니지만,

그가 음악에 헌신한 자리라 생각하니

마음속에서 오래된 여운이 되살아난다.


나는 애절함과 그리움,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며

그의 <사랑의 기쁨>을 조용히 불러 본다.


“Plaisir d’amour ne dure qu’un moment

Chagrin d’amour dure toute la vie”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은 영원히 남았네...”


사랑의 기쁨은 잠시 머물 뿐,

사랑의 슬픔은 평생을 따라온다.


노래는 사라진 사랑을 애도하지 않는다.

그것을 기억하게 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노래한다.


이전 01화그리움은 노래로 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