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예지 Aug 20. 2021

붉음에 대한 생각

고추와 장미의 상관관계

오늘 밤, 나는 붉음에 대해 생각한다. 

엄마가 보내온 고추밭 사진 한 장에,

여름 내내 상기된 두 뺨으로 고추를 따던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가 찍은 고추밭



따도 따도 자꾸만 붉어지던 야속한 고추,

고추를 따느라 너희에게 보내주고 싶은 복숭아를 사러 갈 시간이 없다고, 미안해하던 엄마.

엄마, 그게 왜 미안할 일이야? 

미안해하지도  않아도 될 일에 괜스레 마음 쓰는 엄마를 다그치다 말고,

붉은 고추를 따느라 복숭아를 사러 갈 시간이 없다는,

그 말의 행간에 숨은 뜻을 가만히 헤아려본다. 


아마,

세상에서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내가 아니라 엄마일지도 모른다고.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도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일은 

어쩌면 부끄러워해야 할 감정이니,

그 또한 붉음일지도 모른다고. 


얼마 전, 절기상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의 오후,

남자 친구에게 붉디붉은 장미 한 다발을 선물 받았다. 

며칠 물기 머금은 듯 생생한 붉은빛을 띠며 

잘도 버텨주던 장미는

어느샌가 짙은 붉은색으로 메말라갔다. 


나는 메마른 장미를 바라보며 엄마가 보내준 고추밭 사진을 떠올렸다. 

고추와 장미 사이에는 어떠한 상관관계도 없지만,

어쩐지 오늘 밤만큼은 

고추와 장미 사이에

엄마와 나 사이에,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유로 가득 찬,

어떤 비밀스러운 감정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감정을 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붉은색일지도 모르겠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허공에 집 짓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