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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예지 Mar 07. 2022

유치원 졸업사진 찍던 날

이미지로 읽는 <이름 지어 주고 싶은 날들이 있다> 2



시골 동네에서 아빠와 함께 특수작물 농사를 지으며 아이 넷을 키웠던 엄마는,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내느라 심적/물적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해 달라고 조르는 법 없이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자식 역할을 담당한 셋째 딸인 내게까지 엄마의 사랑이 풍족하게 미칠리 없었다. 그날 다과회에 차려진 초코파이며 쿠크다스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엄마의 치맛단을 잡고 졸졸 따라다니느라. 언제는 엄마는 바쁨을 핑계 삼아 그 자리를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다과회가 끝나고 운동장 한편에 웬 봉고차 한 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같은 반 친구는 서른 명 남짓, 그중에서도 가장 친했던 아이가 제 엄마와 봉고차를 타다 말고 손짓했다.

"니는 안 가나?"

"어. 근데 니는 어디 가나?"

"사진관. 오늘 박사 사진 찍는 날이래."

알고 보니 그날은 유치원 졸업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방이나 거실 한 쪽 벽에 걸리는 박사모를 쓴 졸업식 증명사진 말이다.




가만 보니 친구는 원복을 제대로 다려 입고, 머리도 예쁘게 땋은 모습이었다. 곱게 땋은 머리는 그날 단 하루를 위한 듯 보였다. 늘 손쉬운 관리를 위해 단발머리를 고수했던 나는 친구를 보낸 후 시시각각 변해 가는 엄마의 표정을 가만가만 살펴야 했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 기우뚱 서서 딴 데를 바라보는 엄마를 보고서야 알아챘다. 졸업사진 신청 명단에 내 이름은 없다는 것을.



"어부바."

쉬 업히지 않을 요량이었다. 엄마의 등이 얼마나 따뜻한지 잘 알아서, 그 등마저도 두 살 아래 남동생에게 밀려 내 차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아서. 그것은 알량한 자존심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버티지 못하고 업혔다. 한 마리의 새끼 고라니처럼 업힌 채 참았던 눈물을 아주 길게 쏟아냈다. 엄마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다. 우리는 해를 등진 채 천변을 따라 느릿느릿 긴 산책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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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미지 출처 :

꿈꾸는인생 (인스타그램 @life_withdream)

https://www.instagram.com/p/CZLwRppFfk9/?utm_source=ig_web_copy_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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