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인 아이'로 저장된 친구가 있다. 초등학생 때 만나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온 친구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그만큼 통하는 것이 많다는 뜻이다.
사실 그 친구는 나의 많은 부분을 만들어 주었다.
우린 초등학교 3학년쯤 같은 반이 되어 처음 친구가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친하게 지낸 것은 6학년 때였다.
우린 키가 작아서 비슷한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그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때 나는 막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나보다 조금 빨랐던 친구는 이미 '신화'의 팬이었다.
친구는 나에게 신화에 대해 매일 같이 과외수업을 해주었다. 나는 열심히 멤버들의 얼굴, 이름, 생년월일, 별명, 좋아하는 음식, 취미 따위를 외웠다. 노래를 들으며 누구의 목소리인지도 알아맞히는 시험도 치러졌다.
그렇게 나도 신화에 대해 세뇌당하며 친구와 함께 신화창조로 다시 태어났다.
그 시절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신화, 팬픽, 만화책이었다.
선생님에 대한 약간의 반항심은 있었지만 매우 건전하게 잘 자랐다. 그럼에도 그 친구의 이름이 아직까지도 공격적인 아이로 저장되어 있는 이유는 말투와 눈빛이 조금 공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끝장토론을 좋아한다. 토론을 할 때면 친구의 공격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우리는 마음이 잘 맞는 편이지만 가끔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들이 있다.
낙태, 종교, 교육, 연애, 진로 등 어떤 것이든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있었다.
우리는 근거와 논리를 갖고 격렬하게 대립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다른 친구는 우리의 계속되는 언쟁에 매우 당황하곤 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시간이 너무 즐겁다.
적당하게 친하고 서로에 대해 적당하게만 아는 사이었다면 불편한 대화주제는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이기에 이렇게 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런 토론을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 번도 날씬해 본 적이 없다.
같은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우리는 이전보다 더 자주 보았다. 그때는 먹는 것이 주요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만나면 늘 먹었다.
항상 먹고 싶은 것이 있고,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을 생각했다.
1학년 때 친구와 나는 서로 다른 찜닭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서로 자기네 가게 찜닭이 더 맛있다고 주장했다.
보통 둘이서 찜닭집에 가면 반마리에 밥 2 공기 정도를 주문하지만 그 친구와 함께 가면 둘이서 한 마리를 먹고 밥은 남은 양념에 비벼먹었다. 이탈리아 음식점에 가도 3~4개의 메뉴를 주문하고 다 먹었다. 친하지 않은 친구와 가면 맘 놓고 먹기도 부끄럽고 돈도 부담스러워 1인 1 메뉴 정도만 하는데 그 친구와는 푸드파이터처럼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친구는 프리랜서로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그중 아이들과 만나는 일을 가장 좋아한다.
친구는 돈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면 아이들 보는 일만 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한다.
그 귀엽고 깜찍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힐링 그 자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들을 보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인 처우는 좋지 않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친구는 유복하진 않았지만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그래서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최근 몇 년간 친구의 가장 큰 취미는 보드게임이었다. 정말 보드게임에 중독된 사람 같았다.
자나 깨나 보드게임이야기를 했고 나에게 전파해주고 싶었지만 내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러던 중 몇 해 전 겨울에 둘이서 떠난 여행에서 보드게임을 접하게 되었다.
난 눈을 좋아하지만 이곳은 눈이 잘 내리지 않는다.
그 해는 그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유튜브로 매일 밤 설원이 펼쳐진 여행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강원도로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여기서 강원도까지 가려면 4시간 정도가 걸린다. 아이들이 자동차에서 4시간을 버텨줄 리 없었다.
육아를 하면서부터는 뭔가를 욕구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생긴 이런 마음의 불씨를 꺼뜨리기가 아쉬웠다. 그래서 신랑의 양해를 구하고 친구와 둘이서 여행길에 올랐다.
난 운전이 서툴렀기에 친구가 그 긴 거리를 운전을 해 내가 가고 싶은 장소로 향했다. 가는 내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숙소에 도착하고 배불리 먹은 뒤 친구는 준비해 온 보드게임을 몇 개를 펼쳤다.
완전 초보인 나는 게임의 룰을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조금 걸렸다. 몇 판 만 더 해보면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밤은 왜 그리도 짧던지. 내가 친구의 기대에 부흥할 만큼 즐겁게 하질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맑은 밤에 친구는 종종 별을 보러 가곤 한다. 별자리를 찾는 것이 친구의 행복 중 하나이다.
아주 예전에 나는 '별자리'는 대충 별들을 모양에 맞춰 줄을 그은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학생 때 어떤 겨울밤 친구와 함께 북두칠성을 보게 되었다.
친구의 집은 아주 시골이라 가로등 같은 인공적인 불빛이 거의 없었다.
깜깜한 밤 불을 끄고 누워있으면 내가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조차 헷갈릴 정도였다.
늦게까지 친구와 놀다가 마지막 버스를 타기 위해 그 시골 밤길을 우린 함께 걸었다.
그때 어쩌다가 별자리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야! 별자리 그거 그냥 별들 대충 줄 그으면!!' 하며 외치며 하늘을 딱 바라보았는데.
그냥 누가 보아도 북두칠성이 어마어마한 크기로 떠 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너무 컸고 너무 선명했다.
어떤 것도 눈에 걸릴 것이 없는 광활하고 고요한 하늘에 유난히 밝은 일곱 개의 별이 우리를 압도했다.
아직도 그 순간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조만간 별 보기 좋은 그런 밤이 온다면 함께 별을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