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24시간 동안 공항에서 발이 묶인다면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하고 싶니
누구나 한 번쯤 '내가 세일러문이 된다면?'하고 상상을 한다.
고 믿었었다. 다들 그런 상상을 하며 산다고.
그리고 그 상상이 시작되면 끝이 없다.
'밤마다 나가야 되는데 엄마 아빠가 잠든 후 나가려면 몇 시쯤에 나가야 할까?'
'매일 나가서 악당을 물리치면 너무 피곤할 텐데 어쩌지.'
'내가 달의 요정이 되었다는 것을 누구누구에게까지만 이야기할까?'
누구나 이 정도의 상상은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공상에 가까운 상상을 모두가 즐기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MBTI의 유행으로 알게 되었다.
난 파워 N이었다.
라면 중에 가장 좋아하는 라면은 역시 '만약~라면'이다. 난 이것을 매일 즐기고 있고, 평생 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만약에 유명인사와 24시간 동안 공항에서 발이 묶인다면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하고 싶나요?'
오늘은 집어든 라면 봉지의 이름은 이것이었다.
'유명'하면서 나와 '24시간'동안 '대화'를 할 수 있을 사람.
고민 고민한 끝에 한 명이 떠올랐다.
'오은영 선생님'이었다.
오은영 선생님은 최근 '금쪽같은 내 새끼'를 시작으로 활발히 방송활동하고 있다.
난 오은영 선생님을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보았다.
화내고 울고 폭력적인 아이들도 희한하게 선생님을 만나면 온순한 양이되어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행동이 교정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특히 '생각하는 의자'를 제시하여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끔 하는 선생님의 훈육법이 큰 화제였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훈육에 있어 체벌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런 체벌을 감히 '사랑의 매'라고 불렀다.
그런 선생님이 최근에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 부부를 대상으로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치유하기 위한 방법들을 알려주고 있다.
사실 나는 그런 프로그램을 전혀 보지 않는다. 너무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난 그보다 훨씬 전에 첫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중에 있을 때 오은영선생님이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유튜브로 우연하게 보게 되었다.
그때 선생님의 말들이 참 따뜻했다.
엄마가 되고 나니 난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아이에게 늘 미안했다. 그리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몰라 늘 걱정되고 불안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미숙한 내가 어쩌자고 아이를 낳아서. 이 험한 세상에. 내가 끝까지 지켜주지도 못할 텐데. 그런 생각들에 마음은 늘 울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그런 마음을 딱 알고 눈물을 닦아주는 것 같았다.
선생님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다.
먼저 선생님이 좋아하는 뼈 있는 허니콤보를 사들고 살며시 다가갈 것이다.
그러고는 수줍게 '선생님, 아주 옛날부터 팬이었어요~'하고 인사를 건네야지.
선생님은 그런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도 활짝 웃어 주실 것 같다.
말은 내가 더 많이 하고 선생님은 거의 듣고만 있을 것 같다.
먼저 아이들을 키울 때 느끼는 어려움과 고민들에 대해 물어볼 것이다. 그런데 큰 고민들은 아니다.
예전에 첫째가 어릴 때는 정말 금쪽이에 나가야 하나 싶을 만큼 힘들었는데 정말 그 또한 다 지나가고 말았다.
그렇게 힘들었던 시기도 지나가고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지금의 고민과 힘듦도 결국 더 자라기 위한 과정이겠구나 싶어서 견딜만 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 대해 물어볼 것 같다.
요즘 그게 제일 힘들고 제일 정리가 안된다.
나는 얼마나 슬프면 좋을지, 아빠는 얼마나 슬플지, 아빠의 슬픔에 난 뭘 해야 할지, 얼마나 해야 할지.
또 나에게 온 사십춘기에 대해도 물어볼 것 같다.
이렇게도 흔들리는데 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아이들을 생각했을 때 난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지.
선생님은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미간을 움직이며 슬퍼하기도 하고 마지막엔 따뜻하게 웃어 주실 것 같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이렇게 상상하다 보니 정말 선생님을 만나지 않아도, 대화해 본 적이 없어도, 어떤 대답들을 하셨을지 알 것 같다. 나는 파워 N이니깐.
결국 답은 내 안에 있을 것이다. 알고 있지만 그 목소리가 너무 자신감이 없고 작아서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듣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때론 이런 상상이 텅 빈 공상이 아닌 아주아주 든든한 밥상이 된다. 이런 맛에 난 이 라면을 끊을 수 없다.
오늘도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