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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네가 맞아

by Ander숙

요즘 6살 둘째는 친구에 대해 자주 말한다. 주로 친구 때문에 화가 난 이야기이다.

"오늘도 가인이가 자기 마음대로 했어! 같이 놀기 싫었어!"

그러면 9살 첫째는 '가인이에게 자기 마음대로만 하지 말고 번갈아가면서 하자고 해~, 지금은 같이 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해~'하고 조언해 준다.

그래도 둘째는 속상한 마음만 쏟아낸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양보해야 했던 일, 소꿉놀이는 지겨운데 소꿉놀이만 하고 왔던 일 등등.

첫째는 언니로서 이래저래 해결방안은 제시해 주다가 나중에는 이렇게 말하고 만다.

"언니가 혼내줄까? 나중에 급식소에서 보면 언니가 혼내줄게!"

참 든든한 언니다.


둘째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딱히 그 친구가 나쁜 아이도 아니고 때로는 내 딸의 태도에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인 나는 어떻게 하면 아이가 원만한 교우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생각하며 6살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신중히 고르는데, 언니는 그런 것이 없다.

덮어 놓고 동생 편이다. 내 동생이 착하고 내 동생을 힘들게 하는 친구는 혼이 나야 한다.


나도 그런 오빠가 있었다.

어린 시절 난 오빠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오빠는 항상 나보다 잘했고, 항상 키도 나보다 컸고 그래서 내가 오빠의 동생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오빠랑 함께 다니던 초등학교 시절이 참 좋았다.

반에서 귀찮게 구는 개구쟁이들이 있으면 꼭 오빠에게 일러주었다.

그리고 내일 학교 마칠 때 우리 반에 들러서 꼭 그 남자애를 혼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실제로 오빠가 나섰던 일은 없지만 그런 존재가 같은 건물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인생에서 꼭 그런 존재는 필요하다. 덮어놓고 네가 맞다고 해줄 수 있는 사람.

오빠는 아직까지도 내게 그런 존재이다.

사실 평소에 난 오빠를 있는 둥 마는 둥하게 여기며 연락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짜고짜 전화를 건다.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을 것 같을 때 오빠에게 전화를 해 나의 힘듦을 알린다.

처음 겪는 대학생활을 공허함에 대해, 취준의 어려움에 대해, 엄마아빠의 잔소리와 답답함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남편에 대해, 미래가 안 보이는 회사에 대해.

전후 맥락 없이 화난 상황과 화난 감정으로만 가득 찬 나의 말을 들어도 오빠는 항상 이렇게 말해줬다.

"동생, 나는 언제나 니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해"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를 가까이서 지켜봐 온 사람이 해주는 이 한 마디는 내 마음을 꽉 채워준다.


오빠는 내가 '팥으로 메주를 만들겠다'라고 하면 그때도 믿어 줄 것이다.

그러면 난 나를 믿어주는 오빠를 생각하며, 난 팥을 볶아도 보고 튀겨도 보고 삶아도 보고 쪄보기도 하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끝내 팥으로 메주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도 오빠는 '그래도 다 해 봤으니깐 됐어, 잘했어' 하고 말해 줄 것이다.

나를 이렇게 믿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 힘과 용기, 끈기, 희망, 자신감 온갖 긍정적인 것들을 갖게 해 준다.

오빠는 부모님이 내게 준 선물 중에 최고의 선물이었다.

나도 오빠에게 그런 동생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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