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이들과 책을 읽다가 아주 재밌는 전래동화를 알게 되었다.
제목은 '주머니 속 이야기 귀신'이었다.
옛날 한 꼬마 도령은 이야기 듣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도령은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허리에 차고 다니는 주머니 속에 종알종알 이야기를 하고는 얼른 닫았다.
도령은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남에게 해주지는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도령은 장가를 가게 되었는데, 혼례 전날 도령의 머슴이 아궁이에 불을 때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소리의 정체는 도령의 주머니 속 이야기 귀신들이었다.
주머니 속에서 나오지 못한 이야기들이 귀신이 되어 장가가는 도령을 골탕 먹이려는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 말을 엿들은 머슴은 도령이 신부를 데리러 가는 길에 자진하여 따라나선다.
그리고는 귀신들이 계획을 방해하여 도령을 구해낸다.
사실을 알게 된 도령은 머슴의 노비문서를 없애주고 집과 땅까지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도령은 주머니 속에 갇힌 이야기를 풀어주어 이야기들이 훨훨 날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야기란 본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야 제 맛인데,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는 꽁꽁 싸매놓기만 하니 이야기들이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문득 '휴대폰 속 사진'들이 떠올랐다.
내 휴대폰 속 사진은 아이들로 가득하다.
주말에 간 버드파크, 박물관, 체험교실 등 뭔가 특별히 기억할 만한 곳에서는 수십 장의 사진을 찍는다.
또는 매일 같은 일상의 모습이지만 아이들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행동을 할 때면 얼른 찍는다.
그 순간을 놓치면 그렇게나 아쉽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찍고는 다시금 사진을 찬찬히 감상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사진은 본디 순간을 기록하고 다시금 추억하기 위해 찍는 것일 텐데, 기록만 하고 추억하는 일은 뜸하다.
추억되지 못한 사진들이 혹시 귀신이 되어 나를 해 코치하려 한다면 큰일이다.
필름카메라 시절에는 사진이 참 귀했다.
소풍이나 여행을 가면 아빠가 일회용 카메라를 하나 구입해 주셨다.
그러면 찍을 수 있는 사진은 서른 장 남짓이다.
여행 내내 새로운 장소,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늘 고민에 빠졌다.
'지금 한 장을 사용할까? 누구랑 찍을까?'
그렇게 한 장, 한 장에 신중을 다해 서른 장을 채우고, 여행에 돌아와 사진기를 사진관에 맡겼다.
그러고 나서 인화된 사진을 들고 학교에 가면, 사진을 보고 추가 인화를 원하는 친구들이 사진 뒷면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그것을 모아 다시 사진관에 가져가 추가로 인화한 후 친구들에게는 한 장에 몇 백 원씩을 받다.
그때는 찍을 때도 볼 때도 사진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그 순간이 소중해서, 나중에도 기억하고 싶어서'라는 찍는 마음은 그 옛날과 다를 게 없는데,
찍는 것도 쉽고, 찾아보기도 쉬워져서인지 지금은 오히려 사진으로 추억하는 일은 적어졌다.
그런데 휴대폰 속 사진첩에 '스토리'라는 기능을 보며, (엄청 노인인척 하는 말이지만) 또 한 번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스마트폰이 '어떤 날의 추억'을 혹은 '몇 년 전의 일상'을 정리해서 보여준다. 음악까지 함께!
이것이야 말로 휴대폰 속 사진 귀신..은 좀 그렇고 휴대폰 속 사진 요정이 아닐까 싶었다.
바쁘게 찍고 바쁘게 사느라 사진정리할 틈도 없는, 언제나 바쁘고 바쁜 우리를 위해
사진 요정이 나타나서
'이 날 사진을 많이 찍었네, 좋은 추억이 있던 날이구나~ '
'이 아기의 얼굴이 계속 나오네 연도별로 쭉 모아 커가는 모습을 보여줄게!' 하며 사진을 뽑아준다.
이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가!
아이들이 잠든 밤 나는 종종 신랑과 '스토리'를 보며 아이들과의 추억에 잠기곤 한다.
'이때 정말 힘들었지, 이제 보니 정말 아기 같네! 그땐 다 컸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때 얼굴이 지금도 그대로 있네'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한다. 참 즐거운 시간이다.
오늘도 스토리를 한 번 쭉 재생시켜 봐야겠다.
휴대폰 속 사진요정의 도움을 받아
내가 간직하고 싶었던 순간, 그런데 잊고 있었던 순간을 다시 추억하며 행복을 충전시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