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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by Ander숙

고등학생 때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일본작가의 소설을 즐겨 읽었다.

내용이 좋다기보다는 간결한 문체가 좋았단 것 같다.

당시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이 나와서 얼른 샀던 책 중에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가 있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었는데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뭘 안다고 이런 책을 샀을까.

뭘 알고나 읽었을까 싶다.

시간이 지나 다시금 이 책을 읽어보니 공감되는 부분이 참 많다.




출근하지 않는 삶은 주말과 평일의 차이가 크게 없다.

오히려 전업맘들은 주말이 돌아오는 것, 긴 연휴가 시작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도 많다.

평일이 힐링이고 주말이 피곤인 것이다.

너무나 공감한다. 지금 나는 인턴 전업주부니깐.


평일에는 혼자만의 시간이 많다.

신랑은 일터로 아이들은 학교로 떠나고 나면 완전히 혼자가 된다.

이 고독을 얼마나 고대하고 꿈꿔왔는지 모른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니 뱃속에 아이가 있었을 때부터 늘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은 회사에 있는 시간뿐이었고 그 외의 시간은 늘 양쪽 옆구리에 아이들을 끼고 다녔다.

가끔 자유부인인 날이 있었지만 몸은 자유일지 몰라도 마음은 늘 아이들 걱정에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느낄 수 있는 평일의 외로움이 매일매일 너무 달콤하다.


완전히 혼자가 되어 나는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이나 라디오를 틀고 즐겁게 청소를 할 수 있다.

이어폰을 끼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보글보글 요리를 할 수도 있다.

마트에서도 여유롭게 구경하며 장을 볼 수 있다.

은행, 관공서, 병원 등 업무시간에 가능한 일들을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해결할 수 있다.

이 모든 일들을 평일에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그렇지만 나도 주말을 기다린다.

일단, 주말에는 늦잠을 잘 수 있다.

평일에는 신랑과 아이들의 아침밥을 챙기기 위해 아침에 벌떡 일어나 바로 주방으로 향했는데 주말은 조금 여유를 부려도 괜찮다.

사실 다들 아침밥을 먹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건강과 습관을 위해 매일 아침밥상을 차려야 하니 그 시간이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다.

하지만 주말에는 그런 아침밥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어서 참 좋다.


그리고 주말에는 온 가족이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행복하다.

요즘 신랑은 매일 같이 야근을 하기 때문에 저녁밥을 같이 먹는 날이 거의 없다.

지금 같은 겨울에는 해가 짧고 날씨가 추워 아이들이 일찍 집에 와도 바깥놀이를 할 수가 없어 늘 아쉽다.

거창한 여행은 아니더라도 평일에는 가기 힘든 가까운 근교에 나가 가족과 함께 추억을 쌓을 수 있어 늘 주말이 기다려진다.

꼭 어딜 가지 않아도 놀이터만 가도 주말엔 행복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행복해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하고 엄마랑 있는 시간이 제일 좋다고 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들.

가끔 내가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아도 될까 싶을 때가 있다.


<주말이 짧게 느껴지는 과학적인 이유>

평일 : 월화수목금
주말 : 토일

실제로 짧다.

-하상욱 단편시집 [서울 시] 中 -


인턴 전업주부에게도 주말은 짧다.

평일은 왠지 짧다.

평일도 주말도 다 짧아져버려 그런지 휴직기간이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다. 아쉽다.

그러니 하루하루를 더 꼭꼭 씹어 삼키며 알뜰살뜰 시간을 보내야겠다.

그래서 내겐 주말도 힐링, 평일도 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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