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울푸드는 떡볶이다. 떡볶이라면 기본적으로 다 좋아한다. 궁중떡볶이, 카레떡볶이, 짜장떡볶이, 로제떡볶이, 까르보나라 떡볶이, 바질떡볶이 등 어떤 것이든 좋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떡볶이는 참 변화무쌍하다. 일반적인 음식은 양념 혹은 주재료가 그 음식의 맛과 정체성을 나타낸다. 닭볶음탕, 짜장면, 된장찌개, 봉골레파스타 등 국적을 불문하고 그 음식이 무엇인가, 그 음식이 맛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양념이나 주재료이다. 그에 반해 '떡볶이'의 주재료는 흰 떡이다. 밀떡도 있고 쌀떡도 있지만 떡이 특징적인 맛을 띄지는 않는다. 양념도 앞서 나열한 것처럼 어떤 양념으로도 떡볶이가 될 수 있다. 결국 떡볶이는 '떡을 양념들과 볶는' 그 조리방법이 그 음식의 정체성이다. 이렇듯 떡볶이는 어떤 것이는 품어줄 수 있는 넓은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 떡볶이의 매력이다. 난 그중에서도 빨간 고추장양념에 어묵과 야채가 듬뿍 들어간 떡볶이를 가장 좋아한다.
정말 다행인 건 신랑도 떡볶이를 좋아한다. 우리는 좋은 떡볶이 메이트이다. 또한 놀랍게도 우리는 같은 쌀떡파였다. 개인적으로 '부먹이니 찍먹이니'하는 음식에 파벌을 두는 것이 굉장히 유치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 맛있으니깐. 그런데 떡볶이에 있어서는 쌀떡을 고수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같은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참 행운이다. 아니면 좋아하는 음식이 같아서 더 좋아진 것일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만큼 선후관계를 따지기 어렵다. 아무튼 떡볶이가 분명 우리의 결혼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난 엄청난 낭만주의자는 아니다. 그래서 결혼을 운명적인 상대와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결혼할 시기에 만나고 있는 사람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믿는 편이다. 하지만 신랑과 내가 같은 소울푸드를 갖고 있다는 것은 꽤나 운명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매드맥스'를 본 날 또 한 번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난 보통 영화를 볼 때 '제목'만 알고 영화관에 들어간다. 즉, 매드맥스가 어떤 영화인지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영화가 시작되고 5분 정도 가 흘렀을까.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드넓은 사막에서 펼쳐지는 디스토피아적 클리셰들이 너무 유치해 만화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끄러운 전기 기타 소리가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러다 문득 신랑 얼굴을 보았다. 화를 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집중해서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한번 더 집중해 보려고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랑과 나는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나왔다. 그리고는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떡볶이 먹으러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나는 신랑과 분노를 표출하며 매드맥스에 대한 관람평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충격적 이게도 영화에 대한 평이 좋았다. 평론가는 물론이고 대중적인 평가도 좋았다. 그때 신랑과 나는 이 미친 세상에 우리 둘만 정상인지, 아니면 매드맥스는 정말 재밌는 영화인데 우리 둘만 비정상적으로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 결혼 잘했어요'하고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그날 먹은 떡볶이 맛이 참 좋았다.
지금도 신랑이 유난히 힘들어하는 날에는 떡볶이를 준비한다. 맛깔난 양념은 내가 만들지 못해서 시판 떡볶이 소스를 늘 구비해 둔다. 냉동실에는 가래떡과 어묵도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떡볶이를 한가득 만들어 맛있게 먹고 있으면 아이들은 우리에게 물어본다. '엄마 맛있어? 아빠 안 매워?' 그러면 그럼 '매워서 맛있어, 맛있게 매워. 한 번 먹어볼래?' 하고 떡볶이 한 젓가락을 건넨다. 그러면 아이들은 입을 가리며 고개를 빠르게 옆으로 흔든다. 언젠가는 아이들도 함께 넷이서 같이 떡볶이를 먹는 날이 오겠지. 그때 되면 또 어떤 맛의 떡볶이가 유행하게 될까. 돌고 돌아 고추장 떡볶이를 제일 좋아하겠지만 아이들과 엽떡이든 마라떡볶이는 함께 먹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나의 떡볶이 메이트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