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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한 구석

by Ander숙

혼자 거실에 누워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집에 나만의 공간이 한 구석도 없다니!'


우리 집의 거실은 (내가 산 것들이지만) 어린이 전집 도서로 가득 찬 서재형 거실이다. 알록달록 전집이 꽉꽉 꽂힌 책장이 한 벽면을 채우고 있고 다른 한쪽은 큰 책장과 큰 책상이 있다. 지금 그 책상 앞에 앉아 이렇게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큰 방은 부부침실이다. 하지만 TV가 있어서 아이들이 부부침대를 소파로 삼아 TV를 시청하는 공간이다.

작은 방 1은 아이들 침실이다. 쪼끄만 녀석들이 각자 SS사이즈 침대에서 따로 잔다. 1인 1 침대라니 부러운 녀석들.

작은 방 2는 아이들의 옷방이자 신랑의 자전거 로라방이다. 신랑은 지독한 자전거 덕후인데, 밖에서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날 트레이닝을 위해 사용하는 스마트로라와 작은 TV, 노트북 등이 갖춰진 공간이다. 취미방이라니 부럽다.


설마, 저 주방이 내 공간으로 그렇게 분배된 건 아니겠지?

대다수의 주부들은 주방 같은 나만의 공간은 정중히 거절할 것이다.

내 명의로 된 아파트인데 내 공간은 없다니.


나도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

나만의 한 구석이라도 좋다.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큰 창이 있는 곳이면 좋겠다.

밖은 계절의 변화를 잘 느낄 수 있는 나무와 꽃, 하늘이 보이이면 좋겠다.

그리고 책상 하나를 놓아야겠다. 노트북은 장시간 글작업을 하기에 좋지 않기에 데스크톱으로 하나 놓을 것이다. 그리고 자주 꺼내 볼 리는 없지만 표지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책도 몇 권 올려둘 것이다.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하다. 침대를 놓으려니 너무 눕고 싶을 것 같고, 안마의자는 안마 솜씨가 미덥지가 않다. 대기업 사장님이나 쓸 법한 스타일의 의자를 하나 놓아야겠다. 몸을 젖히면 살짝이 눕혀지며 폭 감싸 안아주는 그런 의자로.

커피나 음료를 먹을 수 있게 커피머신도 근처에 있으면 좋겠다.

꽃나무를 좋아하니 화분도 두어 개 두어야겠다.


상상해 보니 사실 우리 집 거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책상 위가 매우 더러운 것만 빼면.

아이들과 함께 쓰는 책상이라 늘 난잡하다. 접다만 색종이, 교육용 태블릿 PC, 가위, 색연필, 슬라임 그 밖에 갈 곳을 잃은 자잘한 온갖 물건들.

나는 매일 같이 정리하라고 한다. 그러면 그 많은 것들을 어디에다 쑤셔 박아 놓았나 싶게 깨끗해지기는 하는데 다시 더러워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이런 일이 매일 일어나다니. 놀랍고 속이 터진다.


딱 책상만 깨끗하다면 난 지금으로도 만족할 것 같다.

깨끗한 책상, 그 한 구석은 언제쯤이나 허락될까.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어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안 나오는 그 시기쯤은 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난 지금의 더러움을 조금 사랑스럽게 보아야겠다.

난 계속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아이들은 나에게 혼나고 싶지 않은 마음 혹은 사랑받고 싶어 하는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후다닥 책상을 정리하고, 이내 다시 너저분해지는 책상을 좋은 마음으로 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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