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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

by Ander숙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속담을 그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대여섯 살쯤 꼬마였을 무렵, 내 마음의 고향인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에 살던 때의 일이다.

그 시절 우리는 아빠 회사의 사택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 집은 마당이 있는 큰 기와집에 딸린 작은 채였다.

작은 채였지만 큰 방, 작은 방, 주방이 모두 갖춰져 있고 대문까지 따로 되어 있어서 셋방살이를 하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단 하나 불편한 점은 화장실이 밖에 있다는 것이었는데 어린 우리들에게는 '요강'이라는 이동식 화장실이 있었으니 그 마저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큰 집에 사는 주인집 가족들도 오빠와 나를 무척 귀여워해 주셨다.


하지만 나에게는 딱 하나 불만이 있었다.

바로 강아지를 키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시골집에는 대문보다 흔한 것이 개였다. 어느 집에나 개 한 마리 정도는 빌트인처럼 있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만 없었다. 주인집 할머니가 개를 좋아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릴 때는 그런 이유도 납득이 가지 않으니 매일 같이 엄마를 졸라대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마음을 이웃집 강아지를 보며 채우곤 했다.

그렇게 남의 집 강아지와 실컷 놀고 나면 자연스레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그래서 그런 날은 셋방 사는 설움에 목 메어 울기도 했다.

매번 이런 식이니 내가 이웃집에 강아지를 보러 가는 것을 엄마가 질색했다.

하지만 '오늘은 절대로 떼쓰지 않겠다'라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하며 매번 강아지 구경을 갔다.


그날도 앞집에 똥강아지를 보러 갔었다.

태어난 지 1년도 안된 새끼 백구였다.

그 쪼끄만 녀석이 어찌나 눈에 삼삼했는지 그 무렵 매일 같이 앞 집에 갔었다.

따사로운 오후 햇살을 맞으며 시골의 똥개답게 사람들이 먹다 남은 개밥을 먹고 있었다.

오늘의 메뉴는 생선이었다.

생선살은 한 점 없고 얇은 생선 뼈를 씹어대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얇고 가느다란 생선 가시가 무척 날카로워 먹기 불편해 보였다.

측은지심 발동한 나는 생선 가시를 먹기 좋게 잘라주고 싶었다.

그 정도는 여섯 살인 나도 해 줄 수 있었다.

그래서 강아지가 입에 물고 있는 생선 뼈를 향해 손을 뻣었다.

그 순간 강아지가 나에게 덤벼들었다. 밥그릇도 아닌 입에 물고 있는 음식을 뺏으려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충격으로 인한 기억상실 같은 것일까.

마치 블랙아웃이 일어난 것처럼 그 사이의 기억은 나지 않고 내 손에 오래도록 남았던 상처만이 남아있었다.

큰 상처는 아니었다.

내 기억에는 강아지에게 직접적으로 물린 것이 아니라 강아지가 물고 있던 생선 가시에 손이 베였던 것 같다.


그 사건으로 난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을 몸속 깊이 새길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강아지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것... 이 생기지는 않았다.

바로 그다음 날에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다.

난 이런 쪽으로는 비위가 좋은 모양이다.

어떤 사람들은 먹다가 토한 음식은 한 동안 냄새도 맡기 싫다지만 난 그런 것도 전혀 없다.

토한 것은 토한 것이고 음식을 미워할 필요가 없다. 맛있으면 그만.

강아지에게 큰 흉터를 얻었지만 강아지는 귀여우니 좋다.

사실 엄밀히 밥 먹는 개를 건드린 내 잘못이지 강아지는 죄가 없다.


요즘 우리 딸들도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자고 난리다.

난 딱 잘라 안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첫째는 키우고 싶은 마음을 많이 참다가 2년 만에 말한 것이라고 제발 소원을 들어달라고 한다.

나는 동물 키우기의 어려움과 비용, 동물이 겪게 될 외로움, 노후 등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며 설득했다.

그래도 두 녀석은 '힝! 엄만 맨날 안된다고 하고!' 하며 발을 구른다.


나도 속으로 대답했다.

'나도 30년 넘게 키우고 싶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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