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엘리베이터를 탈 때 특히 긴장되는 순간이 있다.
머리숱이 좀 적은 아저씨들이 타면 난 눈을 부릅뜨고 둘째를 조심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라도 '대머리다! 대머리!' 이렇게 소리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악의 없는 순수한 말이 때때로 머리를 멍하게 만들 때가 있다.
나도 예전에 그런 말을 종종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엄마를 따라 이웃집에 놀러를 갔는데, 그 집에는 중학생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다정했다.
언니방에 있는 신기한 물건들을 흔쾌히 만져보게 해 주었고, 내가 갖고 싶어 하는 물건도 망설이지 않고 선물로 주었다. 난 언니가 좋았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난 문득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중학생인데 왜 이렇게 키가 작아?"
그저 순진무구한 질문이었다. 단 한 방울의 조롱도 섞이지 않은.
엄마는 나의 무례한 질문을 듣고 몹시 당황하셨고, 나를 호되게 꾸짖으셨다.
그때까지도 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엄마가 나를 크게 혼내시니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무심코 뱉은 말은 나에게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난 평생 땅꼬마로 살고 있는 중이다.
언니는 나의 말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작은 키로 사는 내내 난 그 말을 후회했다.
내가 뱉은 말이 부메랑처럼 내게 돌아올 때가 또 있다.
이번에도 초등학교 저학년쯤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엄마에게 한껏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엄마는 꿈이 뭐야?"
그러자 엄마는 '우리 아들내미, 딸내미 몸 건강하고~ 하고 싶은 일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지!'하고 대답했다.
난 엄마의 그 말에 "아니~ 그건 우리 꿈이고, 엄마꿈 말이야. 엄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하고 되물었다.
엄마는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는 종종 내가 그 질문을 했던 날을 떠올리시곤 했다. 그때 머리가 띵하고 울렸었다며.
요즘 들어, 아니 사실 평생 동안 나는 그 질문을 품고 살아왔다.
난 꿈이 뭘까? 난 커서 나중에 뭐가 될까?
직업=꿈이 되는 삶을 산다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면 좋아하던 것 마저 그냥 일이 되어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내 꿈은 작가이다.
'작가'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 작가가 꿈이었다.
상상도 해본 적 없던 세계로 단숨에 나를 보내고, 그곳에서 꿈을 꾸게 하고 사유하게 하는 작가.
펜이 칼보다 강함을 증명해 내는 작가.
종이 위에 적힌 글자들의 조합으로 마음을 울리고 치유해 주는 작가.
막연한 동경에서부터 시작된 꿈은 아직까지도 이루고 싶은,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루지 못한 꿈인 채로 남아있다.
다시금 작가에 대한 열정을 품으면서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어른다운 접근을 해보기 시작했다.
'작가'란 무엇일까? 글을 쓰는 사람. 책을 쓰는 사람. 책을 낸 사람.
난 책을 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이름인 적힌 책을 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렇다면 작가가 되는 것은 엄청 쉽다.
세상에 책을 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고 의외로 쉽고 간단한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나 반갑지 않은 현실이었다.
동경해 마지않았던 그런 '작가'가 그런 식으로 되는 것은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금 내 꿈을 생각한다.
내 꿈은 작가이다.
내가 다시 정의한 작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미 난 작가가 되었다. 이렇게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작가라는 꿈 앞에 형용사를 달아주어야겠다.
난 '계속해서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아직은 매일 글 쓰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계속할 것이다.
일단 그러다 보면 뭔가 되어 있겠지.
뭔가 되지 못하더라도 내 브런치 스토리는 조금 두둑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