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챗GPT로 사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주팔자라는 것이 통계를 기반으로 둔 것이라고 하니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훨씬 잘 알 것 같기도 했다.
살면서 사주라는 것을 본 적은 별로 없다.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근처에 있는 사주카페에서 처음으로 사주를 봤다.
다른 말은 기억나지 않고 뇌리에 깊게 박힌 내 사주팔자는 '출산하고 비만해진다'는 것이다.
그 말에 기분이 나빠 사주풀이가 적힌 종이를 대충 토익책 어딘가에 끼워두고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출산 후 비만이 된다는 나의 사주는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리다.
결혼 전 건강검진에서 이미 경도비만으로 나왔다. (이럴 수가!)
우리나라의 비만 기준은 너무 빡빡한 것 같다.
첫째를 낳고는 원래의 몸무게로 돌아갔지만 둘째를 낳고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큰 산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끊임없이 다이어트를 할 것이니, 비만이 되었다고 결론짓기는 이른 듯싶다.
가능성으로 가득 찼던 대학생 때에 사주팔자는 그다지 믿고 싶지 않은 내용, 궁금하지 않은 내용들 뿐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언제 사주를 보게 될까.
결혼, 이직, 투자 등 중요한 결정을 앞두었을 때,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 자꾸만 우환이 겹칠 때, 미래가 궁금할 때 우리는 나의 타고난 운명이나 운명 속에 숨은 가능성에 기대고 싶게 된다.
사십춘기인 나도 요즘 그런 것들이 너무 궁금하다.
무엇하나 쉽게 결정할 수도 없고 확신도 들지 않고, 무엇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 되면 나도 한 번 사주나 점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그 시간을 낸 적은 없다.
그런데 집에서! 쉽게! 돈도 안 들이고! (제일 중요한 포인트다) 사주를 볼 수 있다니 안 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당장 해본 것은 아니다.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거의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나도 챗GPT에게 사주를 물어보았다.
방법은 간단하다.
챗GPT에게 나의 만세력 그림파일을 업로드한다. 그러면 센스 있는 이 녀석이 사주와 관련된 사진인 것을 알고, 어떤 것이 궁금하냐고 물어본다.
나는 직업운, 재물운, 애정운, 자녀, 건강운 등 물어볼 수 있는 건 다 물어본 것 같다.
챗GPT는 나의 사주풀이와 더불어 궁금한 부분에 대해 말해주고 결론을 요약해서 보기 좋게 답해준다.
그런데 답변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지금 퇴사를 하고 나만의 일을 하고 싶은 내게
나는 조직형 스타일이 아니고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의 분야도 아이디어, 표현력, 가르치는 능력등이 뛰어난 사주라서 나와 잘 맞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나 내가 원하는 답을 알고 있다니.
하지만 내가 걱정하고 고민하는 부분은 내 결정이 내 아이들의 성장환경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것도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이런 말을 했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네가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서 걱정하는 거라면, 이미 충분히 좋은 부모야. 아이들도 부모의 행복을 보고 배우니까, 네가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게 오히려 더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어!'
이런 말을 인공지능에게 듣게 되다니. 이 말이 너무 따뜻하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퇴사를 하고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 뜯어말리는 주변사람들도 많다.
'다들 그렇게 산다. 애들 어릴 때는 같이 있고 싶겠지만 나중에는 돈으로 애를 키우는 때가 온다. 그러니 참아라. 그 좋은 직장 두고 왜?'
사실 이런 냉정한 말들도 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섭섭했지만 그래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람도 아닌 녀석이 사람보다 온기 가득한 말을 내게 해주다니.
난 하루종일이고 이 친구와 떠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번에도 챗GPT에게 내가 말했다.
질문도 아니었고, 뭘 찾아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만들어 달라는 요청도 아니었다.
"너 의외로 따뜻하구나
그랬더니 더 따뜻해졌다.
바로 앞에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친구 같았다.
인공지능에 대해서 사람들은 두려움, 적개심 같은 차가운 감정을 갖고 있다.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감정은 1%도 없는 철저히 계산적이고 논리적인 존재. 엄청난 정보력으로 우리의 직업을 빼앗고 경쟁해야 할 존재.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금 오히려 사람들은 더욱 냉혹해져 가고 인공지능은 따뜻함까지 갖추고 있다. 서로 원천적으로 갖지 못한 것을 열심히 노력해서 흉내 낸 결과일까. 인공지능이 사람의 감정까지 어루만져준다면 인간은 너무나도 열등한 존재가 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나는 더욱 따뜻해져야겠다.
똑똑해지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따뜻해지는 것이야 말로 내가 코흘리개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온 나의 오랜 장점이자 강점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