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내 경우에는 '희망'이다.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 난 우울에 빠졌었다. 나를 이끌어가는 중추적인 감정은 우울과 희망이었다.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 찬 유년기를 지나, 사춘기 무렵부터 우울이 내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사춘기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요동치며 순수함을 집어삼키고 깊은 고민과 수많은 질문들의 답을 찾는 격정의 시기이다. 사춘기에 찾아온 나의 우울은 '나'라는 아이덴티티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감정이었다. 그 시절에 난 우울감을 즐겼었다. 우울함으로 나는 깊이 침잠하며 내 속의 들여다보았다. 그런 우울감을 즐길 줄 아는 나는 좋아했다. 다른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아이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울은 그렇게 유쾌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20대와 30대에 겪은 우울증으로 알게 되었다.
취업이 너무도 힘들었다. 상반기 취업에 실패하면 하반기, 하반기에도 실패하면 다음 상반기. 나의 청춘이 6개월 단위로 뚝, 뚝 잘려나갔다. 그렇게 힘들게 취직하게 된 회사는 아직까지도 나에게 트라우마이다. 일이 힘든 게 아니고 사람이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든 취업 끝에 딱 한 군데 합격한 곳. 그 마지막 희망이 무참히 짓밟힌 것이다. 난 깊은 수렁에 빠지기 시작했다. 회사가 너무 싫었지만 다시 취업준비생이 되기는 더 두려웠다. 내겐 선택지가 없었다. '내일이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조차 없어지니 우울이 밀려왔다. 우울은 회복, 자신감, 기대감, 믿음 같은 희망찬 감정들은 모두 앗아가고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다행히 그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그때 만난 몇몇 사람들 덕분이었다. 난 재취업과 함께 홀가분하게 퇴사할 수 있었다. 그때 퇴사하면서 나를 괴롭힌 사람들에게 큰 소리 한 번 못 치고 나온 것이 아직도 후회가 된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난 조용히 퇴사했을 것이다.
그다음번 우울은 둘째를 출산하고 난 뒤에 시작되었다. 산후우울증과 코로나블루가 결합되어 나의 원천적 우울을 건드렸는지도 모른다. 사랑스러운 아이로 인해 우울함이 든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 죄책감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내가 볼 수 있는 사람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과 남편뿐이었다. 모든 화살은 남편에게로 갔다. 난 남편이 너무 미워 내가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용기도 없어 매일 몰래 울며 지냈다. 더 심각한 우울이 나를 덮쳐왔다. 내일이라고 애들이 갑자기 훌쩍 커버릴리가 없었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좀 크면 나아질 것이라는 말에 숨이 막혔다. 결국 그 시간들을 내 몸으로 다 받아내야만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희망을 잃어버렸다. 그 우울은 혼자힘으로 버티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병원에 갔고, 엄마들이 가장 많이 복용한다는 약도 먹게 되었다.
사실 우울증 약을 믿지 않았다. 내 우울함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슬픈 생각과 감정으로 인한 것인데, 알약이 생각을 막을 수가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점차 나아졌다. 꼬리에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생각의 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했다. 꼬리의 길이가 점차 짧아졌다. 약의 주요 기능은 세로토닌의 흡수를 억제하는 것이었다. 몸과 마음과 생각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는 조금씩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울이 찾아와도 희망을 향해 더욱 힘차게 달려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우울이 내게 고통만을 준 것은 아니었다. 긴 터널을 지난 후에는 성장과 성숙을 얻을 수 있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의 범위도 더 넓혀주었다. 우울의 반대말이 희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되도록 우울은 피하고 싶다. 사춘기에 그랬던 것처럼 사십춘기의 우울은 적당히 즐기고 깊어지는 도구로만 사용하고 싶다. 그게 내 맘대로 되진 않겠지만 늘 희망이라는 해독제를 곁에 두고 있다면 우울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희망은 시시때때로 변할 수 있다. 지금 나에게 희망은 나의 가족, 매일 글 쓰는 이 시간, 변화에 대한 나의 열망이다. 이 희망의 구슬들을 주머니에 딱 넣어두고 우울이 나를 찾아올 때면 손끝으로 구슬들을 이리저리 굴려 보아야겠다. 내겐 이것들이 있으니 그렇게 쉽게 나를 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해를 쫓는 해바라기처럼 밝은 빛을 향해 고개를 높이 들어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