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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 키스

by Ander숙

9살의 나의 꿈은 10살이 되는 것이었다. 어서 빨리 10살이 되어 당당히 '10대'라는 무리에 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10살이 되어보니 별 게 없었다.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는 기쁨에 비하면 2학년이 3학년이 되는 것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10살이 되었을 땐 빨리 4학년에 되어 이젠 '고학년'의 무리에 속하고 싶었다. 10살은 생각보다 시시했지만 10살 그 무렵 나에게는 분명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아빠에게.


아빠와 나는 특별한 인사법이 있었다. 아빠가 '숙냉~(이것은 아빠가 나를 부르는 애칭이다) 우리 코하자'하면 코끝을 맞대어 비비며 인사했다. 이것은 '에스키모 키스'라고 하는데, 세계 여러 나라의 독특한 인사법에 대해 소개한 어린이 대백과사전에서 처음 보았다. 그 인사법이 무척 재미있어서 그때부터 아빠랑 나는 에스키모인처럼 인사했다. 아빠는 '코'를 하고 나면 '뽀'도하 자고 했다. 그러면 나는 참새가 부리를 바닥에 콩콩 찍듯이 아빠 입술에 뽀뽀를 했다.


Eskimokiss.jpg 에스키모 키스 (출처 : 위키피디아)

그런데 10살이 되자 코도 뽀도 하기 싫어졌다. 아빠의 담배냄새도 싫고 그냥 다 싫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난 꼬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가 '냉~ 코하자'하면 나는 '싫어! 코 하기 싫어!'하고 대답했다. 그러면 아빠는 잔뜩 애교 섞인 목소리로 '힝, 아빠는 숙냉이 코 안 해줘서 마음이 슬프다'하여 우는 시늉을 했다. 마음 약한 나는 마지못해 코도 하고 뽀도 했다. 하지만 이미 콩깍지가 벗겨지기 시작한 나는 아빠가 코를 하자고 하면 일단 먼저 싫다고 했다. 그러면 아빠는 늘 똑같이 우는 시늉을 하며 섭섭하다 하고 나는 조금 더 버티다가 결국엔 또 코를 하고 반복이었다.


그러가 어느 날 나는 울며 불며 나는 코하기 싫다고, 뽀하기 싫다고, 아빠 냄새나서 싫고 더럽고 그냥 싫다며 아빠에게 잔뜩 짜증을 냈다. 결국 아빠와 나는 앞으로 뽀는 안 하고 코만 하기로 했다. 서로 하나씩 양보해 얻은 타협안이었다.


뽀는 안 해도 되었지만 여전히 코도 하기 싫었다. 그래도 아빠가 속상하다시니 착한 딸은 그 정도는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중학생이 되면 안 하겠지 했지만 그때도 했고, 고등학생이 되면 안 하겠지 했지만 그때도 했고, 성인이 되면 안 하겠지 했지만 그때도 아빠눈엔 그저 귀여운 딸이니 그때도 코를 했다. 내가 결혼하고 난 뒤에도 가끔 코 하고 싶다는데 내가 어찌나 짜증을 냈는지 모른다. 내가 아빠에게서 코하자는 말을 더이상 듣지 않게 된 때는 내가 첫 딸을 낳은 후 아빠의 사랑이 내 딸에게로 넘어간 뒤부터였다. 지독한 딸바보다 우리 아빤.


10살의 난 그렇게 아빠에게서 성큼 멀어졌다. 엄마에게는 그보다 천천히 조금씩 멀어졌지만.

이제 9살이 된 딸을 보면 벌써 마음이 섭섭하다. 요즘 아이들은 뭐든 빠르다고 하니 내 품에서도 빨리 포르르 날아가버릴까 서글프다. 그러니 더 듬뿍듬뿍 아낌없이 주어야겠다. 작은 코끝을 맞대고 가까이서 눈도 바라보고 따뜻한 입김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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