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의 나의 꿈은 10살이 되는 것이었다. 어서 빨리 10살이 되어 당당히 '10대'라는 무리에 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10살이 되어보니 별 게 없었다.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는 기쁨에 비하면 2학년이 3학년이 되는 것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10살이 되었을 땐 빨리 4학년에 되어 이젠 '고학년'의 무리에 속하고 싶었다. 10살은 생각보다 시시했지만 10살 그 무렵 나에게는 분명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아빠에게.
아빠와 나는 특별한 인사법이 있었다. 아빠가 '숙냉~(이것은 아빠가 나를 부르는 애칭이다) 우리 코하자'하면 코끝을 맞대어 비비며 인사했다. 이것은 '에스키모 키스'라고 하는데, 세계 여러 나라의 독특한 인사법에 대해 소개한 어린이 대백과사전에서 처음 보았다. 그 인사법이 무척 재미있어서 그때부터 아빠랑 나는 에스키모인처럼 인사했다. 아빠는 '코'를 하고 나면 '뽀'도하 자고 했다. 그러면 나는 참새가 부리를 바닥에 콩콩 찍듯이 아빠 입술에 뽀뽀를 했다.
그런데 10살이 되자 코도 뽀도 하기 싫어졌다. 아빠의 담배냄새도 싫고 그냥 다 싫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난 꼬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가 '냉~ 코하자'하면 나는 '싫어! 코 하기 싫어!'하고 대답했다. 그러면 아빠는 잔뜩 애교 섞인 목소리로 '힝, 아빠는 숙냉이 코 안 해줘서 마음이 슬프다'하여 우는 시늉을 했다. 마음 약한 나는 마지못해 코도 하고 뽀도 했다. 하지만 이미 콩깍지가 벗겨지기 시작한 나는 아빠가 코를 하자고 하면 일단 먼저 싫다고 했다. 그러면 아빠는 늘 똑같이 우는 시늉을 하며 섭섭하다 하고 나는 조금 더 버티다가 결국엔 또 코를 하고 반복이었다.
그러가 어느 날 나는 울며 불며 나는 코하기 싫다고, 뽀하기 싫다고, 아빠 냄새나서 싫고 더럽고 그냥 싫다며 아빠에게 잔뜩 짜증을 냈다. 결국 아빠와 나는 앞으로 뽀는 안 하고 코만 하기로 했다. 서로 하나씩 양보해 얻은 타협안이었다.
뽀는 안 해도 되었지만 여전히 코도 하기 싫었다. 그래도 아빠가 속상하다시니 착한 딸은 그 정도는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중학생이 되면 안 하겠지 했지만 그때도 했고, 고등학생이 되면 안 하겠지 했지만 그때도 했고, 성인이 되면 안 하겠지 했지만 그때도 아빠눈엔 그저 귀여운 딸이니 그때도 코를 했다. 내가 결혼하고 난 뒤에도 가끔 코 하고 싶다는데 내가 어찌나 짜증을 냈는지 모른다. 내가 아빠에게서 코하자는 말을 더이상 듣지 않게 된 때는 내가 첫 딸을 낳은 후 아빠의 사랑이 내 딸에게로 넘어간 뒤부터였다. 지독한 딸바보다 우리 아빤.
10살의 난 그렇게 아빠에게서 성큼 멀어졌다. 엄마에게는 그보다 천천히 조금씩 멀어졌지만.
이제 9살이 된 딸을 보면 벌써 마음이 섭섭하다. 요즘 아이들은 뭐든 빠르다고 하니 내 품에서도 빨리 포르르 날아가버릴까 서글프다. 그러니 더 듬뿍듬뿍 아낌없이 주어야겠다. 작은 코끝을 맞대고 가까이서 눈도 바라보고 따뜻한 입김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