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목욕시간

오늘 저녁 7시

by Ander숙

둘째 딸의 목욕시간이다. 옷 하나를 벗는데도 엉덩이를 씰룩이며 장난을 치고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씻기 전에 앞머리를 조금 잘라주기로 했다. 아이들의 머리는 보통 내가 자른다. 첫째도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전부 내가 잘라주었다. 둘째가 배 위로 떨어진 머리칼을 더럽다는 듯이 탁탁 털어내자 내 옷에도 머리칼이 붙어버렸다. 나는 '씻어내면 되는데 웬 호들갑이냐'며 핀잔을 주었다. 산뜻하게 잘라진 앞머리가 귀엽다. 물로 머리카락들을 흘러내려 보내며 본격적인 샤워를 시작한다.


둘째는 연신 종알거린다. 오늘도 유치원에서 어떤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같이 놀기 싫은데도 같이 놀자고 하고,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마음대로 가져가서 기분이 아주 나빴다고 한다. 지난겨울만 해도 이 친구가 너무 좋다고 난리 더니 요즘은 제일 피하고 싶은 친구인가 보다. 6살의 마음이란.

머리의 거품을 씻어내고 몸에도 거품칠을 한다.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니 좁은 샤워부스가 금세 더워진다. 다. 이제 아이가 더 커버리면 이렇게 씻기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아이들 샴푸와 바디워시의 향기는 달콤하고 싱그럽다. 나도 같이 쓰고 싶지만 아무래도 'Baby'나 'Kids'가 붙은 것들은 가격이 비싸니 참아야겠다. 몸의 거품까지 씻어내고 뽀송뽀송한 노란색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었다. 바디로션을 바를 시간이다. 손길이 닿을 때마다 한껏 오버액션을 하며 간지럽다고 몸부림친다. 말랑말랑 보들보들한 아직은 아기 같은 둘째의 피부가 내 손끝을 간지럽히는 것 같다. 궁둥이를 한입 베어 물고 싶다.


오늘의 내복은 새로 산 파자마이다. 핑크색에 리본그림이 흩뿌려진 복숭아 향기가 날 것 같은 파자마. 아이들 옷에 돈을 쓰는 것에 조금 인색한 편이지만 '파자마'에는 마음이 약해진다. 어릴 적에 나도 이렇게 오로지 잠옷으로 입으라고 만들어진 파자마를 입고 싶었다. 파자마를 입고 파자마 파티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TV 속에나 존재하는 이야기였다. 때로는 사소한 과거의 결핍이 지금의 약점이 되곤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난 '파자마'라는 내 잠옷을 따로 산 적이 없다. 외출복이 더럽거나 후줄근해지면 자연스레 집에서만 입는 옷으로 이름을 바꾸어 옷감이 시스루가 될 때까지 입는다.


이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줄 차례이다. 이 시간을 제일 지루하게 생각하는 딸은 드라이기 소리보다 더 크게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른다. '일은 랄랄라 하나이고요~ 이는 랄랄라 둘이고요~' 조금 더 말려주고 싶지만 이제 겨울의 추위도 물러가고 거실의 공기도 차갑지 않으니 적당히 말려주고 '끄읏!'하고 외친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욕실을 빠져나간다. 아, 누가 나도 가만히 있으면 머리끝에서 발 끝까지 씻겨주고 닦아주고 입혀주고 말려주면 좋겠건만. 한 30년 전쯤에는 충분히 그런 호사를 누렸을 것이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나도 이제 씻어야겠다. 오늘도 굿밤이 되기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에스키모 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