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꽂혀있는 것은 '제철행복'이다. 제철 음식을 챙겨 먹듯이 그 철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잊지 않고 챙기는 것. 청명인 지금은 꽃놀이가 제철이라고 한다. 그런데 봄이 되자 이런저런 일들도 바빠져 제대로 된 꽃놀이를 갈 시간이 도통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제철 꽃놀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 아이들 등굣길에 교정에 보이는 꽃이 보이면 잠깐 짬을 내어 꽃을 본다. 이름도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본다. 푸른 잎사귀와 꽃잎, 꽃잎 속에 있는 꽃술도 자세히 관찰해 본다. 향기는 있는지 킁킁 냄새도 맡아본다.
봄에는 쑥도 빼놓을 수 없다. 해마다 철이 되면 시어머니께서는 쑥떡을 많이씩 보내주신다. 나는 쑥떡을 먹을 만큼씩 소분해서 꽁꽁 얼려놓고 매일 조금씩 꺼내어 먹는다. 콩가루 듬뿍 묻힌 쑥떡도 맛있지만 나는 그냥 쑥떡에 들기름을 찍어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입 안 가득 쑥향이 퍼지고 매끌 매끌한 들기름에 씹는 맛이 더 좋아진다. 쫄깃한 쑥덕보다는 쑥이 씹히는 쑥설기나 쑥버무리도 좋아한다.
내가 이렇게 제철의 행복에 푹 빠지게 된 계기는 '제철행복'이라는 책 덕분이다. 지난 12월에 우연히 윌라에서 이 책을 듣게 되었는데 딱 내 취향에 맞았다. 제철행복은 1년을 사계절이 아닌 24절기로 나누어 그 절기마다 느낄 수 있는 일상의 행복을 담은 에세이이다. 작가의 개인적인 삶과 생각뿐만 아니라 우리 선조들은 각 절기에 어떤 풍류를 즐기며 살았는지도 담고 있어 내용도 알차다. 혹시 제철행복을 놓치고 사는 독자를 위해 절기마다 할 수 있는 제철 숙제도 적어놓았다.
이 책을 보며 나도 딱 이때에만 할 수 있는 사소한 행복들을 채우며 살아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책을 항상 가까이에 두었다가 절기가 바뀔 때마다 꺼내어 다시 읽어 보며 제철행복을 실천하고 있다. 사실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다. 우리는 이 봄 가운데를 살고 있고 어제도 봄이었고 내일도 봄이기에 제철의 행복을 미룰 때가 많다. 하지만 그렇게 지나간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일 년을 기다려 새로운 봄이 온다고 해도 2025년의 봄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함께 내년 봄을 기약했던 사람이 더 이상 내 곁에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기에 난 제철의 행복을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조금 더 나누고 싶다. 내일은 화전을 부쳐먹기로 했다. 진달래는 벌써 품절이라 해서 다른 식용꽃을 준비해 두었다. 제철꽃이 아니면 또 어떻겠는가. 제철을 핑계 삼아 소중한 이들과 2025년 청명의 추억을 하나 부쳐먹으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