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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쉬게 했던 곳

by Ander숙

이 넓은 우주에 내 마음 한편 놓아둘 곳이 없나 싶을 때가 있다. 둘째를 임신하고 거의 만삭이 되어갈 무렵, 내 마음은 매일 고단했다. 따뜻한 내 집에서도 내 속은 쓸쓸했고, 지척에 있는 친정집에 가도 엄마 마음이 아플까 봐 내 마음을 풀어놓지를 못했다. 그렇게 편한 구석 하나 없는 날들을 보내다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일단 집을 나가고 싶었다. 집은 내 마음을 쉬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선택한 곳은 '차 안'이었다. 어디로든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차에 탔지만, 갈 곳이 없어 그냥 그곳에서 울었다.


코로나로 어린이집이 휴원에 들어가 하루 종일 첫째와 있었기에 난 울고 싶어도 방긋방긋 웃으며 아이와 놀아야 했다. 신랑은 퇴근 후에 건강관리를 한다며 운동을 갔다. 니 건강만 중요하냐 내 정신건강은 보이지도 않냐 하며 쌍욕을 날리며 싸우고 싶었지만 첫째 앞에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내 안의 스트레스가 쌓여 뱃속에 있는 둘째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는 건 아닌가 싶어 또 걱정이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표정을 감추고, 마음속의 감정도 숨기며 나를 억누르다가 결국 난 터져버렸다. 별들마저도 잠이 든 듯한 고요한 밤, 난 차 안에서 끄억끄억 소리를 내며 갓난아이처럼 울었다. 그 작은 공간에서 누운 것도 앉은 것도 아닌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자세로 난 토하듯 마음을 쏟아버렸다. 난 늘 누군가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랐지만 철저히 혼자인 곳에서야 내 마음을 펼쳐 보일 수 있었다.


울고 나니 한결 편해졌다. 이것이 바로 '카타르시스'구나 하고 깨달았다. 울고 나니 배가 고파셨다. 근처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스트레스 풀리는 매운맛을 먹고 싶어 처음으로 불닭볶음면을 골랐다. 맵찔이라 까르보로 골랐다.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물도 버리지 않고 스프를 부어버렸다. 오히려 좋았다. 국물이 없었다면 훨씬 더 매웠을 것이다. 그리고는 시원한 아이스크림도 하나 먹었다. 상쾌한 새벽이었다.


그 뒤로 나는 출산 전까지 종종 차 안으로 갔다. 그리고 난 후에는 편의점에서 까르보 불닭볶음면과 폴라포를 먹었다. 차 안은 아늑하고 따뜻한 곳은 아니지만 어둠을 틈타 타인에게 보일 수 없는 검은 마음을 꺼내어 말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언젠가 이 차를 폐차하게 된다면 왠지 눈물이 날 것 만 같다.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고마운 녀석, 앞으로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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