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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곳

by Ander숙

지리산 둘레길 그 어딘가에는 숨겨진 보물이 있다. 바로 '달팽이 게스트하우스'이다.

23년 봄, 지독한 자전거 덕후인 신랑이 '지리산 그란폰도'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어린이날 황금연휴 때 말이다. 어린이 키우는 집에서 어린이날 자전거 대회라니! 간 큰 남자다. 하지만 난 하해와 같이 넓은 마음을 갖고 있기에 허락해 주었다. 대신 온 가족이 같이 가기로 했다. 그렇게 남원시 산내면 달팽이 게스트하우스에 가게 되었다.


달팽이집에서 있었던 2박 3일은 모든 것이 행복하고 완벽했다. 일단 집에 너무 예뻤다. 달팽이집은 남원시내와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옥게스트 하우스이다. ㄱ자 한옥 두 채가 있는데 큰 채에는 호스트인 키키 부부가 사용하는 곳, 큰 주방과 조식을 먹을 수 있는 대청마루, 그리고 게스트를 위한 방 한 칸도 있다. 우리는 반대편 작은 채에 머물렀다. 작은 채에는 방 2칸과 거실 겸 주방, 거실에는 사다리로 올라갈 수 있는 다락방이 있었다. 그리고 툇마루를 통해 화장실 겸 욕실이 있다. 마당에는 강아지와 집과 평상이 있었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예쁜 정원에 꽃과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난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집 안은 더 아늑했다. 우리가 잠을 자는 방은 그냥 시골집 방이었지만 공용공간인 거실에는 장식 하나에도 정성이 느껴졌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다락이 마음에 들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낮은 다락이 있는데 7살 4살 꼬마들의 마음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비밀의 방 같았다.

달팽이집의 또 다른 매력은 조식이다. 주말 아침에는 호스트인 키키가 손수 만들어주신 아침밥을 먹을 수 있다. 아침 한 끼를 해결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은데 맛은 더 일품이다. 어린이집에서 영양교사로도 일하셨다는 키키는 맛과 영양을 갖춘 최고의 식사를 제공해 주셨다. 다음에 가게 되면 조식을 먹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주말을 끼고 가고 싶다.


그리고 운명처럼 만난 또 다른 가족이 있었다. 어린이날을 맞아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보기 위해 수원에서 온 7살 남자아이네 가족이었다. 둘레길을 걷기 위한 한 가족과 자전거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만난 한 가족에게는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이 있었다. 바로 '비'였다. 어린이날 황금연휴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은 야속하게 3일 내내 비만 뿌려댔다. 그칠 줄 모르는 비 속에서 두 가족은 달팽이집에만 머무를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이 여행을 완벽하게 만드는 하이라이트였다. 남자아이네 가족은 비가 오니 걷지도 못하고 나가 놀 곳도 없어 막막해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선물 같은 우리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동갑내기 두 아이는 5초 만에 친해져서 온 방을 누비며 뛰어놀았다. 그리고 그 뒤는 4살짜리 둘째 딸이 졸졸 따라다녔다. 각자 준비해 온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놀기도 하고, 비가 조금 잦아들면 장화를 신고 마당에서 고양이와 강아지를 좇으며 뛰어다녔다. 아이들이 알아서 잘 놀아주니 어른들도 조금 쉴 수 있었다.


그렇게 빈틈없이 즐거운 2일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마침내 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수줍은 듯 조금씩 얼굴을 내밀었다. 참 어이없지만 고마운 날씨였다. 아직도 아이들은 달팽이집에 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예전에 나는 여행의 절반은 날씨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그렇게 좋지 않고 사진도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비만 내린 여행이 모두에게 너무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다니 참 행복하다. 올해에는 다시 한번 달팽이집에 가고 싶다. 그곳은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이기 때문에 또 어떤 예기치 못한 행복을 우리에게 줄지도 모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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